그리스를 둘러싼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주변국 국채 값이 급락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유로존 채권 시장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그리스 주변국 국채 가격이 급락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스페인의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0.13%포인트 상승해 2.34%를 기록했고,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2.32%, 포르투갈은 3.21%로 각각 상승했다. 이날 하루 동안 거래량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현상은 그리스 정부와 국제 채권단 간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이날에도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면 그 여파가 미칠 주변국 국채를 투자자들이 투매하고 있는 것.
JP모건 자산운용의 빈센트 쥬빈스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그리스가 디폴트 되면 주변국 국채는 거의 폭락할 우려가 있어 현재는 리스크가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JP모건은 최근 몇 달 사이 그리스 주변국 국채 보유량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만해도 유로존 각국의 국채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에 힘입어 강세를 유지했다. 4월과 5월 독일 국채는 약세였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국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주간 이들 국가에도 여파가 미치기 시작, 급기야 이날에는 매도세가 급격히 유입됐다.
독일 국채 분트에 대한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국채의 스프레드는 올들어 최대치로 확대했다. 10년물 분트에 대한 스페인 국채 10년물의 스프레드는 1.5%포인트 이상으로 지난해 8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스페인의 경우, 연말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리스크가 대두되고 있다. 지난달 총선에서 약진한 신흥 좌파연합인 포데모스가 스페인의 정책을 전환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1월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 시리자)이 집권, 구제금융을 둘러싸고 국제 채권단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스페인도 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나티시스 자산운용의 올리비에 드 라루지에르 유로존 채권 부문 최고책임자는 “스페인의 정치적 리스크가 가장 큰 위험이 되고 있다”며 “스페인 장기 국채를 일부 팔고 현지의 여론 조사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유로존의 단기금융 시장에서 은행의 자금조달 상황을 반영하는 신용위험 지표는 2년여만의 최고치에 도달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3개월 물 유럽 은행 간 금리 (EURIBOR, 유리보)와 오버 나이트 인덱스 스와프(하루짜리 초단기 외화대출 금리, OIS) 스프레드의 포워드에 해당하는 FRA· OIS 스프레드는 18베이시스 포인트(bp, 1bp=0.01%)로 2013년 7월 이래 최고치로 벌어졌다. 6월 10일 시점만 해도 13.8bp에 불과했다.
유럽 채권시장에서 그리스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거래량이 많은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30%에 근접했다. 금리 급등은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 간의 협상이 부진해 그리스가 결국 디폴트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HSBC홀딩스 채권 분석 글로벌 책임자 스티븐 메이저는 “리스크 회피의 전형적인 조짐”이라며 “중요한 일정이 지나더라도 협상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날 채권단의 연금삭감 요구 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채권단이 현실주의로 돌아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며 물러서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그리스에 대한 자금지원 의지를 보이면서도 “공은 그리스 정부로 넘어갔다”고 경고했다.
전날 브뤼셀에서 이뤄진 양측의 협상은 45분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시장에서는 오는 18일 예정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 회의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팽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