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블린 대통령은 지난 1965년 이스라엘이 독일(옛 서독)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초대 주 이스라엘 독일대사가 부임했을 때 돌과 물병을 던지며 반대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의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두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건 스스로를 ‘역사의 죄인’으로 인식한 독일 정부의 한결같은 반성과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이스라엘의 용서 때문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독일의 나치 역사를 사죄해왔다. 올 초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일을 앞둔 기념식 연설에서도 그는 “독일은 수백만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독일-이스라엘 수교 50주년 기념식은 지난 4일 서울 용산 독일문화원에서도 열렸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와 우리 구트만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과거사 사과와 용서’를 주제로 기념연설을 펼치며 양국의 동반자적 관계를 확인했다.
특히 구트만 대사는 “하쇼아(유대인 학살의 이스라엘식 표현)라는 슬픈 과거사로 갈등 관계였던 독일과 이스라엘이 수교 50년을 기념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1주일 뒤인 22일이면 한국과 일본 간 국교 정상화도 5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지금의 한일 관계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讀賣)신문의 공동여론조사 결과 양국 관계는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한국민 중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84.9%까지 올라갔고, 일본국민 역시 73%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일 관계에 대한 평가도 1995년 ‘좋다’는 비율이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43%, 60%에 달했던 것이 한국에선 올해 처음으로 한 자릿수(7.7%)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도 13%로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한국과 일본은 언제든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 있고 장장 2500여년에 걸쳐 교류하며 서로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웃나라다. 한국과 일본을 떼어놓고는 아시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양국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독일과 이스라엘이 그랬듯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 사실로, 회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먼저 이를 인정하는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반대로 우리 정부와 국민은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을 자제하고 일본을 우리의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사과만큼 중요한 게 용서다.
또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행사는 반드시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한다. 외교·정치적 원칙과 자존심은 잠시 접어 두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행사장에 나란히 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일 관계 정상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