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강산이 변하면서 지면은 화면으로, 일간보도는 실시간 보도로 바뀌었습니다. 쏟아지는 속보 속에서 고민은 더 깊어졌지요. 그렇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던 어느 날. 꽤 오랜만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언론 보도로 왜곡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지난달 28일 자본시장연구원은 ‘거래소시장 효율화를 위한 구조개혁 방향’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해외 사례를 밑그림으로 거래소의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지요.
먼저 자본시장연구원 전문가들이 나섰습니다. 이들은 “코스닥을 거래소 자회사로 분리하는 게 현실적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돌리긴 했지만 골자는 ‘코스닥 분리’였습니다.
이어 이해 관계가 얽힌 각 단체 대표들도 나왔습니다. 코스닥 분리를 찬성하는 일부 학계와 벤처캐피탈협회, 금융위원회, 그리고 이에 맞서는 거래소측이 입장을 밝혔습니다.
거래소를 대표하는 기획총괄 임원이 먼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앞서 제기된 주제 발표에 대해 “보다 큰 그림에서 분석이 이어졌어야 했다.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며 입을 열었습니다. 반대 입장이 뚜렷했습니다. 그는 논점의 오류와 시각 차이, 현실 등을 짚어가며 ‘코스닥 분리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어 말미에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입장발표를 마쳤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통신사는 물론 주요 언론까지 한국거래소의 “변화하겠다”는 발언만 쏙 골라냈습니다. 기사만 보면 ‘거래소 역시 코스닥분리 일부 수용’으로 비쳐졌습니다.
한술 더 떠 주최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현장에서 세어봤던 기자의 수는 손가락에 꼽혔지만 보도자료를 고스란히 옮긴 기사는 수십 배 많았습니다.
이튿날 해당 임원을 만났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발언이 왜곡된 것과 관련해 적잖게 당황스러워했습니다.
코스닥 분리는 어느 쪽이 맞느냐를 따지기 전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본시장의 올바른 패러다임을 만들고 우리 역시 그 안에서 자유롭게 투자 영토를 넓힐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잘못 전달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전히 더 많은 기자들이 사실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밤잠을 줄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언론도 존재하고 있음을 부끄럽지만 인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세미나에서 보도되지 않은 사실 한 가지도 고백합니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 분리 반대를 주장하던 거래소 직원들의 질의가 쏟아졌지만 찬성측 인사들은 뚜렷한 근거와 정책의 당위성을 내세우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금융위를 대표해 참가했던 자본시장국장 역시 쏟아지는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