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내부에 임시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방안이 처음으로 윤곽을 드러냈지만 핵심인 ‘부지’ 관련 논의가 빠져 있어 험로가 예고되고 있다. 2024년이면 모든 임시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돼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을 대체할 뚜렷한 에너지 대안을 찾지 못한 정부가 오는 2029년까지 원전 2기를 더 짓기로 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 핵폐기물 임시저장마저도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발 큰 상황에서 2020년까지 처리 핵심시설이 모두 들어설 부지를 선정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과제일 수 밖에 없다.
11일 사용화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의 국민적 소통과 논의를 통해 마련해 발표한 10개 조항의 권고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 원칙으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되기 전에 사용후핵연료를 안정적인 저장시설로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2051년까지는 시설을 건설해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기간 처분시설 부지 또는 비슷한 지역에 지하연구소 부지도 정하고 2030년부터는 실증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또 지하연구소 부지에 늦어도 2020년부터 임시로 원전 내에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옮겨와 보관할 수 있는 이른바 중간저장시설인 ‘처분전보관시설’을 착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때 사용후핵연료 처분장과 지하연구, 처분전보관시설은 한 곳에 모아 관리해야 한다.
최근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또다른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식인 ‘재처리’ 기술 연구의 물꼬가 트이게 됐지만 아직 협정의 정식 서명이 이뤄지지 않아 재처리방안을 대안으로 선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땅에 묻는 ‘처분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지만 이번 권고안에는 처분시설 건설의 핵심인 ‘부지선정’이 빠져 향후 과제로 남게 됐다.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인 경주 방폐장이 운영되기까지 25년이 걸린데다,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상태여서 선정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은 내년부터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도달해 사용후핵원료 관리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함에도 지역주민들이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원전의 사용후핵원료를 기장지역에 영구보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홍두승 공론화위 위원장도 “여론수렴하니 현재 원전이 소재한 지자체나 주민은 빨리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또다른 문제는 정부가 최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 기후변화 체제인 ‘포스트2020’과 연계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차원에서 2029년까지 원전 2기 추가건설키로 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지난해 전력 소비증가율이 0.6%에 그쳤는데도 연평균 증가율을 2.2%로 높게 잡아 ‘전력수요 부풀리기’ 논란이 일고 있어 미비한 핵폐기물 처리 대책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공산이 커졌다.
정부는 이번 공론위의 권고안을 가능한 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2년여간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권고안이 마련된만큼 국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환경부, 행정자치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하고 사용후핵연료 처리 대응책 마련을 준비해왔다.
공론화위는 국회 토론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이달 말까지 산업부 장관에게 최종 권고안을 전달할 계획이다. 권고안이 제출되면 곧바로 부지선정 절차에 들어가야 하고 후속조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도 시급하다.
하지만 부처간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견차로 인한 갈등 등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부지 선정 시점이 2020년까지 임을 감안하면 차기정권의 스탠스도 관건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