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누굴까? 바로 마르틴 루터다. 마르틴 루터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유는 그가 독일어를 사용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출간 책의 거의 대부분은 라틴어로 쓰였다. 그런데 루터는 자신의 책 대부분을 독일어로 썼다. 그가 독일어로 책을 쓴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다름 아닌, 책의 전파력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즉, 루터는 자신이 쓴 책이 보다 널리 읽혀, 이른바 ‘비판의 공유’를 원했다. 반대로 대부분의 당대 지식인들이 책을 라틴어로 쓴 이유는 책 속에 들어있는 정보를 널리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즉, 당시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나름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싶어했다는 얘기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허균이 ‘홍길동 전’을 한글로 썼던 이유도 당시의 상황 비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보의 독점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영향력 행사 혹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정보를 독점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정부는 모든 정보를 독점하려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유언비어 유포자를 잡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언비어는 정보에 대한 접근의 기회가 적을수록 나오는 법인데, 자신들의 행위는 반성하지 않고 지금 유언비어를 잡겠다고 나서는 정부당국의 입장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정부는 끝내 지난 7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거나 거쳐간 병원 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는 너무 때늦은 감이 있다. 지난 5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평택성모병원에 대해 실명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메르스 확진 환자가 이 병원에 있을 당시 방문했던 이들이 자진신고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복지부가 평택성모병원으로부터 비롯된 1차 유행은 종식됐다고 선언한 걸 보면 이 역시도 뒷북을 쳤다고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한 명의 에볼라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즉각적으로 병원과 환자의 이름을 포함한 인적 사항을 공개했다. 이와 비교할 정도는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메르스 환자가 이 정도로 다수 발생하기 이전에 정보를 공개해야 했었다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판단은 순전히 정부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 사안의 위중함을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이런 판단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받아야 한다. 주무장관이 나서서 “개미 한 마리” “이 잡듯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뭔가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은 하는데 국민들의 눈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정부가 이런 일에 투입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였어야 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데, 정부를 신뢰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던 정부의 태도는 결국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으로 일을 번지게 했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유형의 위기에 과연 현 정권은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여부인데, 이런 문제로 국민들이 또다시 걱정하는 사태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안보란 영토와 국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도 포함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