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 = 유화업계는 지난해 유가 폭락과 저마진 구조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록 올해 1분기 들어 실적이 흑자전환해 적자의 연결고리를 끊었다고 하지만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 다소 개선된 경영 환경이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우려는 업계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최근 “중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저성장에 따른 수요 감소, 셰일 혁명과 글로벌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현상에 수출형 사업구조를 지닌 국내 석화업계가 위기에 몰렸다”며 “이러한 위기는 10여년 전부터 예견됐지만 ‘설마’라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유화업계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제 아래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며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SK이노베이션이다. 이 회사는 최근 페루 천연가스 수송법인 TgP의 참여 지분(11.19%) 전량을 팔았다. 매각 대금은 총 2억5100만 달러(한화 약 2780억원)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은 또 인천시 항동 소재 유휴 부지와 인천시 석남동 소재 부지 등을 각각 200억원대에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경북 포항의 물류센터 부지와 일본 타이요오일의 지분도 정리했다.
OCI는 회사와 사업 연관성이 적은 OCI머티리얼즈를 포기하기로 했다. 올해 높은 수익을 내는 우수한 자회사를 매각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한계를 인정했다. OCI는 매각대금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사업구도를 갖춰 나가기로 했다. 이 밖에 정유사들 역시 수익성이 낮은 직영주유소를 매각하고 있다.
◇ ‘읍참마속’ 심정… 인력도 조정 = 유화업계의 체질 개선은 비단 자산 매각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도 병행하고 있다. 호황일 때 투자를 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업계에서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18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퇴직 신청자에게는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60개월분의 기본급을 퇴직위로금으로 지급하는 한편 5000만원 이내의 자녀 학자금과 전직·창업 서비스를 지원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인력 구조조정이 있었다. GS칼텍스는 2012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인력을 대상으로 차장급 이상 70여명의 희망퇴직을 받았으며 임원 15%를 축소했다. 사업본부도 7개에서 5개로 줄였다.
에쓰오일은 10개 부서를 통폐합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임원을 줄이는 등의 인력 감축이 있었다.
◇ ‘한우물’로는 안돼… 돈 되는 것 하자 = 정유와 석유화학 등 본연의 사업으로는 더 이상 승부를 볼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유화업계는 기존 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사업 다각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고부가가치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도 석유화학 업체들이 관심을 두는 분야다.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로 주목받는 폴리케톤을 상용화한 효성은 지난 2012년 울산에 연산 1000톤 규모의 파일럿 설비를 구축해 폴리케톤을 생산하고 있으며, 연산 5만톤 규모의 폴리케톤 상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케미칼은 PPS(고내열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 ‘에코트란’을 내세워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코오롱플라스틱은 열가소성 탄소섬유 복합소재 ‘컴포지트’와 3D 프린팅용 ‘인크레용’ 등을 적용한 소재시장에 진출할 방침이다.
이 밖에 LG화학은 무기화학 부문 전문가 이진규 서울대 교수를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영입하는 등 종합 소재기업으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LG화학이 내세우는 키워드는 ‘R&D가 강한 세계적 소재기업’이다. LG화학에서 주목되는 사업 분야는 전기차 배터리와 ESS(에너지저장장치)이다. 최근 3년 새 LG화학의 전지 사업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서 12%대 중반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