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1032~1085)의 제자 양시(楊時)와 유초(柳酢)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스승의 동생 정이(程頤·1033~1107)를 섬기고자 찾아갔다.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이 조용히 기다리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 뒤 정이가 눈을 뜨고 보니 두 사람은 한 자나 쌓인 눈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를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송사(宋史) 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다.
정문입설(程門立雪)은 정(程)씨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는다는 뜻으로,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성어다. 줄여서 입설(立雪)이라고 쓴다. 이와 같이 간절하고 성실한 자세로 학문에 정진한 양시와 유초는 여대림(呂大臨) 사양좌(謝良佐)와 함께 정문(程門:정호와 정이의 문하)의 4대 제자로 꼽힌다.
정조의 일득록 16 훈어(訓語) 3에 이 말이 나온다. 성균관 유생들에게 응제(應製)를 보이는데 선비들의 풍습이 가지런하지 않자 대궐의 뜰에 공수(拱手)하여 서도록 하고 반나절이 지나서 정문입설(程門立雪) 고사를 시제(試題)로 냈다고 한다. 이날 밤에 과연 큰 눈이 내리자 정조가 하교하기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참으로 이른바 ‘문밖에 눈이 세 자나 깊이 내렸도다’[門外雪深三尺也]라는 것이다. 입직한 신하들에게 명하여 이 일을 주제로 부(賦)를 짓도록 하라”고 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의 승려 혜가(慧可·487~593)는 달마(達磨)의 제자가 되기 위해 눈 속에서 왼팔을 절단하면서까지 구도(求道)의 성심을 보여 인정받은 전설로 유명하다. 그가 팔을 절단한 일은 혜가단비(慧可斷臂)라는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끔찍한 일이지만 구도의 열의가 그토록 놀라웠다는 것만 알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