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헌법재판관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있다. 재판관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지만, 한 번 임명되고 나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구조다.
하지만 2013년 취임한 박 소장의 임기는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임기를 재판관 취임 시점부터 계산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한다’고만 규정하고, 소장 임기를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재판관 재직 도중 임명된 박 소장은 취임 시점에서 6년 임기를 새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취임과 동시에 스스로 임기를 6년이 아닌 재판관 잔여 임기라고 밝혔고,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에 소장을 한 번 더 지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헌법이 재판관 임기를 대통령보다 길게 정해 헌재의 독립성을 보장한 취지가 틀어진 것이다.
정부는 박한철 소장을 임명한 2013년 통합진보당을 해산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신청했다. 신청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을 심리하는 현직 재판관 중 한 명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할 수도, 현재 소장을 연임시킬 수도 있는 권한이 있었다. 사건 당사자 중 한쪽이 심판기관의 인사권을 쥔 구조에서 사건을 진행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헌법재판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건은 적지 않다. 정당해산심판이나 대통령 탄핵심판은 물론, 과거 행정수도 이전 사건처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관련된 입법 관련 사건도 헌재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재판관들이 대통령이 행사하게 될 2017년 헌법재판소장 지명권을 의식하고 양심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겉모습을 형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 소지는 충분하다.
헌재소장의 임기를 명확히 하는 것은 단순히 한 기관에 관한 사안이 아니다. 헌재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쳐다보며 일을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헌재소장의 임기는 입법을 통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