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자본시장은 ‘핀테크’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핀테크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각종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진보에 따른 변화는 이 칼럼의 쟁점이 아니다. 조금은, 아니 많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자본시장에 관심을 좀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국 자본시장이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브로커지 영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10년이 훨씬 지났다. 그 사이 자산관리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을 받았지만 실제로 증권사에게는 큰 수익모델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자본시장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숫자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일자리 창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한 마디로 국내 시장만으로 먹고 살기에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결론을 도출해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 의미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증권사 해외점포가 5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 규모가 1500만달러(한화 약 164억원)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다. 현재 19개 증권사가 80개의 해외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적자만 낸다고 지적을 받던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가 된 사례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그리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해외 진출은 필연적인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국내 증권사의 해외 진출을 선도한 사람이 바로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회장이다. 박 회장은 이미 2003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홍콩, 영국, 미국, 브라질, 인도, 중국 등의 진출이 이어졌다. 현재 11개국에 진출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수익모델 부재로 철수하기도 했지만, 그의 눈은 늘 세계 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내에서도 박 회장의 얼굴을 보기 힘든 이유다.
지난 2011년에는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로 유명한 아큐시네트를 인수했다. 아큐시네트는 내년에 상장할 계획이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에도 집중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입주한 서울 을지로의 센터원도 부동산 금융 기법을 동원한 그의 작품이다.
박 회장의 다양한 시도, 그중에서 해외 진출에 대한 집념은 진취성이 다소 모자란 국내 투자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국내 자본시장은 KDB산업은행, 농협, KB금융, 하나금융, 신한지주 등 보수적인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 금융지주그룹이 대규모 판매채널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그룹, 현대그룹, 현대차그룹, 한화그룹, SK그룹, 한국금융지주 등 대기업이라는 우군을 둔 투자회사의 영향력이 강하다.
금융지주회사나 대기업의 뒷배경이 없는 순수한 투자회사로는 미래에셋금융그룹, 대신금융그룹, 교보그룹, 메리츠금융그룹 등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전업 투자회사의 경우 든든한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경쟁사에 비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비록 갖가지 규제로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한 게 냉정한 현실이다.
필자가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회장의 도전을 눈여겨 보는 이유다. 대형 금융지주나 대기업 등 그 어떤 배경도 없이 독립적으로 생존해야 하는 조건, 그 조건 속에서 세계 무대로 나아가 생존하려는 그의 도전이 기필코 성공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미래에셋뿐만 아니라 대신, 교보, 메리츠 등 전업투자 회사들도 의미있는 존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현재 한국 자본시장이 ‘도전과 모험’이라는 투자세계의 ‘야성(野性)’이 상당 부분 거세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매번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점이 그 증거다. 누군가는 야성이 사라진 이 시장에 일격을 가해야 한다. 필자가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회장의 도전을 응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