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골퍼들이여, 재치를 키우시오

입력 2015-04-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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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여성 연예인들이나 스포츠스타들 중에서 재치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팬 여러분께 감사하구요, 부모님께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구요” 이렇게 이러구요 저러구요를 늘어놓다가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로 끝난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쟤네들은 평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사나?’ 하게 된다.

골퍼 이야기를 해볼까. 미국의 크리스티 커가 2005년 LPGA 미켈롭 울트라 오픈에서 우승한 직후 한 말은 “목말라요. 맥주가 필요해요”였다. 왜 그랬을까. 대회를 개최한 미켈롭 울트라가 맥주회사이기 때문이었다. 갤러리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맥주회사 임직원들은 신이 났다.

그런데 우리 여성골퍼들(일부 기자들이 흔히 ‘태극낭자’라고 쓰고 있다)은 이런 재치와 말솜씨가 부족하다. 경기라고 하면 좋을 텐데 악착같이 시합이라고 하는 것부터 거슬린다. 영어로 말하는 건 물론 더 못한다.

노르웨이 골퍼 수잔 페테르센은 2013년 5월 킹스밀 오픈 당시 퍼팅 비결을 묻는 질문에 “close eyes then stroke it”, 눈을 감고 (감각에 의지해) 퍼팅한다고 대답했는데, 갤러리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stroke는 자위를 한다는 은어라고 한다. 같은 서양 사람이고 LPGA에서 오래 활동해 영어가 능숙한데도 몰랐나 보다.

우리 골퍼 중 답변이 재치 있었던 경우는 ‘꼬맹이’ ‘울트라 땅콩’으로 불리던 장정(2014년 은퇴)이다. 그는 IBK기업은행의 후원을 받던 2006년 6월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다른 나라 골퍼들이 모자에 쓰인 IBK가 뭐냐고 묻자 “IBK? I’m a Birdie Killer”라고 대답했다.

이런 말은 순간적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평소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비거리를 늘릴지, 마지막 날 어떤 옷을 입고 라운딩할지 그런 것만 챙길 게 아니라 우승하면 뭐라고 할까, 방송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어떤 제스처를 할까, 이런 걸 생각해 두어야 한다.

4월 6일 종료된 LPGA투어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는 미래에셋 소속 김세영(고려대)이 거의 우승할 뻔했다. 대회 장소는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Rancho Mirage)의 미션힐스 골프클럽이었다. 모자의 로고 ‘Mirae Asset’을 보면서 김세영이 우승할 경우 ‘Mirae’의 a와 e 사이에 g를 써넣어 란초 미라지의 Mirage로 만들어 흔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미국 팬들이 박수쳤을 거고 미래에셋도 로고가 부각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브리터니 린시컴이 우승컵을 가져갔다. 그도 한때 미래에셋 후원를 받던 골퍼다. 결혼을 앞둔 린시컴은 우승 후 ‘챔피언 연못’에 캐디는 물론 약혼자, 부모와 함께 뛰어들었다. 그걸 보면서 미래에셋 소속이었다면 Mirae를 한 번은 Mirage로, 또 한 번은 Marriage(결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이런 생각까지 해줘야 되니 나는 정말 너무 바쁜 것 같다).

남아공 골퍼 어니 엘스(Ernie Els)는 팬이 많다. 덩치가 큰데 스윙이 부드러워 ‘빅 이시’(big easy)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팬들이 어느 대회에선가 ‘Ernie who else?’라는 펼침막을 들고 응원했다. 이게 무슨 말? “어니 엘스 말고 누가 우승하겠어?” 그거 아닌가? 이런 재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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