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혹은 친박의 세력 축소는 지난번 황우여 전 대표가 정의화 의원에게 국회의장 선거에서 질 때부터 관찰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황우여 현 사회부총리가 당연히 국회의장에 뽑힐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참패로 끝났는데, 이런 ‘이변’은 그 이후 서청원 전 대표가 김무성 의원에게 당대표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친박이 밀리는 것은 더 이상 이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유승민-원유철 조(組)의 승리도 그런 의미에서 이변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승리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빠져 있고, 그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의원들마저도 현 정권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음이 이번 경선에서 증명된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은 지난해 말 터진 정윤회 문건 파동부터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건의 진위 여부보다는 청와대의 문건이 유출됐음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그냥 넘어가려는 박 대통령의 모습과, 여기서 비롯된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퇴진 요구도 묵살됐다고 국민들이 생각하면서부터 위기는 본격화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까지 출간됐다. 이 회고록은 남북 간의 접촉에서 일어났던 비화까지 담고 있어 현 정권이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고, 4대강 문제나 자원외교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일종의 배수진을 치는 성격까지 담고 있다고 할 때 역시 현 정권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는 회고록이다. 이런 사실을 이 전 대통령 측이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의도했다면 이 역시 지금 정권이 흔들리고 있기에 이런 ‘공격’이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생각했다면 이번 원내대표 경선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공존을 모색하겠다는 후보보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는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졌다.
일반적으로 의원들은 지금쯤이면 차기 총선 공천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그건 여야 모두 똑같다. 그런데 이번 원내대표 경선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줄서는 것보다는 김무성 대표 체제의 공고화를 선택하는 것이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런 측면은 청와대가 더 이상 당에 일정 부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구조가 돼 버렸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앞으로 청와대가 어떤 실수 아닌 실수를 했을 때도 여당에 적극적 방패막이 역할을 더는 기대하기 힘든 구조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거와 같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현상이 덜 나타나겠지만, 만일 요새같이 당의 지지율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능가하는 역전 상황이 지속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는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지적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청와대는 더욱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황의 극복은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한껏 위축돼 있는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국민이 원하는 인사, 국민이 원하는 솔직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