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강국인 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과 최근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내 축산 업계는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대내적으로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식품에 대한 수요 등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외국 축산물과 경쟁해 차별화된 유망 품목 중심으로 수출 활성화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축산물 개방시대에 접어들고 있지만 국내 축산 업계 현실은 여의치 않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질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FTA 발효에 따른 수입 축산물 증대로 수급 불안과 경쟁이 심화돼 축산농가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국의 도축장도 대부분 영세해 위생시설 재투자 여력도 요원한 상황이다.
이처럼 축산업계가 국내외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시점에서 국내산 축산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김유용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정민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FTA지원센터장, 남인식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상무에게 우리나라 축산물 수출 활성화 방안과 유통비 절감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수출 활성화, 부가가치 높이고 브랜드화 필요 = 정민국 센터장은 우리나라가 50여개 국가와 FTA 체결을 맺은 상황에서 이를 잘 활용하면 축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돼지고기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는 삼겹살 등의 부위를 선호하지만 외국의 경우 우리와 선호하는 부위가 달라 단기적으로 부위별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도 수요의 외연이 확대돼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용 교수는 축산물의 수급 안정을 위해서 축산물 수출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내 축산물의 가격에 등락이 있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수출은 이러한 가격 등락의 완충 역할을 해 국내 축산물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공육의 수출을 늘리려면 가격 경쟁력과 브랜드화가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구제역과 AI로 인해 생육을 수출하는 데 여러 제한 요인이 있다”며 “가공육 중심으로 수출을 해야 하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외국은 기업 차원에서 브랜드화를 하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별로 선호하는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돼지의 부위에서 콩팥을 선호하고 태국이나 미얀마는 귀를 좋아하고 러시아는 꼬리를 선호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이런 특수 부위들을 수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들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남인식 상무는 수출 확대에 어려움은 분명히 있지만 우리 축산물의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 상무는 “우리나라가 구제역과 AI 청정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품목별로 수출에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나라 축산물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중국 축산물보다 뛰어나 경쟁력이 우위에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우유를 예로 들며 “중국에서도 지역별 편차를 고려하더라도 대체로 우유가 공급 과잉 상태이지만 한국산 우유의 품질이 뛰어나 가격에 상관없이 많이 수입한다”고 덧붙였다.
정 센터장도 “멜라닌 사태 등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자국의 유제품에 대한 불신이 많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유제품이 중국에 많이 수출되고 있다”며 “우리 축산물이 안전한 축산물, 부가가치가 높은 축산물로 거듭나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통비 절감 위해 축산 계열화 필요 = 전문가들은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기업체나 생산자단체 등이 주체가 돼 농가가 생산한 축산물을 도축·가공한 뒤 판매·유통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경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센터장은 “지금처럼 산지에서 소비자로 전달하기까지 단계를 많이 거쳐야 하는 유통구조에서는 비효율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며 “외국의 경우 축산 계열화가 이뤄져 생산에서 가공·유통·판매까지 단일 경영체가 담당해 상품 품질의 균일화와 유통비용 감소를 이끌어 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도 도축장의 역량 강화를 통한 축산 계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은 도축장이 대형화되고 유통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중소 규모의 도축장이 많다”며 “우리나라도 도축장의 구조조정을 통해 지역 거점 중심의 대형화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브랜드화를 하려면 계열화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농가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조합형 대형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 상무도 “생산농민과 조합원의 이익을 보장하며 건전한 유통과정을 확립하기 위해서 협동조합형 축산 계열화가 필요하다”며 “정부도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한우에 대해서는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자금을 통해 농가-지역축협-농협중앙회 간 계열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계열화 체제 구축을 통해 3~4년 안에 국내 소 시장은 50%, 돼지 시장은 30~40% 정도는 농협이 담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수익 다변화 이끄는 6차산업 활성화해야 = 전문가들은 생산농가의 수익 다변화 차원에서 6차산업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상무는 “축산 농가 입장에서 단순 생산에서 벗어나 가공·유통에 관광까지 접목해 수익을 다변화하는 긍정적 요인이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도 내가 먹는 우유와 고기가 어떻게 위생적으로 처리되고 생산되는지 알 수 있어 국내 축산물에 대한 인식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지 축산에 대해서도 강조하며 “평지에서 집단 사육하는 기존 축산 관행에서 산지라는 친환경적인 형태로 경영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라며 “산지 축산이 아직 많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6차산업이 점차 성공 모델들을 통해 다른 축산 농가로 확산하고 있는 것처럼 산지 축산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도 “앞으로는 단순히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찾아와서 실제로 가축을 키우는 것을 보고 우유를 짜보기도 하고 관광도 하는 복합적인 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6차산업이 전 축산 농가에 일반화되기는 어렵지만 6차산업의 가능성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계적으로 이런 성공 모델들이 주변으로 파급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6차산업 활성화에 앞서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반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일반 농가들에 6차산업 활성화는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 양돈장은 유럽에 비해 생산성은 낮고 생산비용은 비싼데 이런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