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제작 JK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 감독 윤제균)이 500만 관객을 넘었다. 개봉 15일 만에 쾌거다. ‘해운대’로 ‘1000만’ 타이틀을 얻은 윤제균 감독은 5년 만에 흥행성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배우 황정민이 있다. 영화계 몇 안 되는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는 그는 아버지 덕수 역으로 극 전개를 이끌었다. 특유의 자연스러움은 20대부터 70대까지 이어진 한 남자의 삶을 관통하며 관객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황정민은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2013년 ‘신세계’(468만)를 넘어 자신의 필모그래피 최다 관객 기록을 경신했다.
‘국제시장’은 1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다. 올 한 해 개봉한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군도: 민란의 시대’ 등 100억 대작보다 그 규모가 크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부담감과 함께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런 큰 버짓(budget, 예산)의 영화는 저도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설 때 ‘재밌다’는 말도 듣고 싶지만 ‘돈 안 아깝다’는 말을 듣고 싶다. 저조차도 영화를 보고 아내에게 ‘돈 아깝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 부분이 배우로서 가장 큰 핵이다. 내 몫은 이미 다 했다. 이제부터는 관객의 몫이다.”
‘국제시장’은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드라마다. 아버지 덕수 역의 황정민은 20대 풋풋한 사랑의 감정부터 30~40대 가장의 책임, 70대 노인의 감회 등을 표현했다. 리얼한 노인 분장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제일 중요했던 건 70대였다. 70대 중반 노인네의 행동을 보고 관객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저럴까’라는 의문점을 가져야 했다. 70대를 정확히 표현하지 않으면 20~40대가 다 망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노인 흉내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상과 생각을 이해해야 했다. 감독과 이야기를 통해 이해가 되니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할아버지의 행동, 손 떨림, 걸음걸이, 눈빛 등 모든 것들이 나에게 중요했다. 파고다 공원에 가서 관찰하는 등 고민하고 공부하고 취재해서 연기했다.”
극 중 덕수는 그야말로 고생의 아이콘이다. 삶 자체가 자신을 위한다기보다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 흥남 철수 이후 부산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파독 탄광 광부, 월남전 현지 업무 등 고된 일상을 보낸다. 영화는 덕수의 삶을 통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너무 힘든 것만 보여줬나. 좋은 삶도 분명히 있었다. 덕수는 우리의 아버지도 될 수 있다. 나열된 시퀀스를 보며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각자의 아버지가 겪은 일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평범해 보일까 고민했다. 일반 관객이 황정민이란 배우를 보면 평범하지 않지만 전 저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극 중 이산가족 상봉에 나온 막순이처럼 제 얼굴이 평범했다면 파급효과가 더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국제시장’은 아버지의 삶을 통해 현대사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포레스트 검프’, 일본의 ‘올웨이즈-3번가의 석양’, 중국의 ‘인생’ 등 각국의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있었고, ‘국제시장’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한 최초의 영화다.
“모두 우리의 역사다. 우리의 삶이었고 지난 추억이다. 한국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분명히 있다. 먼 시절 같지만 한 세대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괜히 멀게만 느껴진다. 아버지도 ‘국제시장’ VIP 시사회에 오셨다. 직접 가서 어땠냐고 물어보면 되는데 어머니를 통해 물어봤다. 그렇게 거리감이 있다. 아버지는 큰 산과 같은 존재 아니겠나. 지금의 제가 아빠가 되고 나니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제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