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작업공 조모(38)씨는 지난 8월 19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소재 사무실에서 붙박이장을 뜯어내다 작은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조씨는 동료 인부 2명과 함께 나흘 전 화재로 타버린 사무실 내부를 수리하던 중이었다.
라면상자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나무 상자를 열자마자 조씨와 동료들은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시가 65억원 상당의 금괴 130여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집주인 김모(84·여)씨의 죽은 남편이 은퇴 후 증권수익 등으로 모은 재산을 금괴로 바꿔 사무실 붙박이장 아래에 보관해온 것이었다. 김씨와 자식들은 아버지가 금괴를 숨겨놓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조씨와 동료들은 처음엔 경찰에 신고할지 말지 갈등하며 옥신각신했다. 결국 이들은 130여개의 금괴 중 한 사람당 한 개씩만 꺼내 가진 뒤 나머지는 그대로 제자리에 넣어두고 신고는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욕심이 생긴 조씨는 밤이 깊어지자 동거녀 A씨와 함께 오전에 작업했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낮에 넣어둔 나머지 금괴를 전부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완전범죄가 될 뻔했던 조씨의 범행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조씨가 동거녀 A씨와 헤어진 뒤 새로운 애인과 함께 금괴를 들고 도망가버리자 같이 금괴를 들고 나왔던 전 동거녀 A씨가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조씨를 찾아줄 것을 의뢰했고, 센터 직원이 경찰에 이 사실을 제보한 것이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조씨와 나머지 인부들, 금괴를 매입한 금은방 업주 등 총 7명을 검거하고 19억원 상당의 금괴 40개와 현금 2억2천500만원 등을 압수했다.
경찰조사에서 조씨는 "훔친 금괴를 금은방에 처분해 생긴 현금을 지인에게 투자하거나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조씨를 특수절도 등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인 인부 박모(29)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아버지가 금괴를 숨겨 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범인을 잡지 못했다면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