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 19일 경륜·경정·스포츠토토 사업 등을 운영하는 정부 산하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 전현직 임직원들이 법인자금을 쌈짓돈처럼 빼내 쓴 사실을 적발하고 관련자들을 입건했다. 이날 서울 송파경찰서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정정택(69) 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불구속 입건했다. 정 전 이사장은 2011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지인과 체육계 관계자 수백명에게 수십만원 상당의 고가품을 명절선물 등으로 보내 법인자금 2억9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모(47) 전 상생경영팀장도 함께 입건해 구속했다. 김 전 상생경영팀장은 거래업체를 시켜 납품 단가나 수량을 부풀리거나 허위견적서를 제출하게 한 뒤 계약이 이뤄지면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3년간 법인자금 1억1600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기관 자금이 횡령범죄 대상이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지난 18일에는 양구군청 소속 공무원 A(36)씨가 공금 통장에서 8000여만원의 보조금을 빼내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A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공금통장에서 조기 햅쌀 포장재, 유기질 비료 지원 등 명목의 보조금 8000여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해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 10일에는 장애인 보호와 직업재활 시설에 쓰여야 할 국가 보조금 1억3000만원을 보호시설 운영자 등이 경찰에 검거된 사례도 있다. 장애인 보호시설 원장 이모(58)씨 등 6명은 사무장과 공모해 외국에 사는 아들·조카·지인 등 4명과 퇴사한 직원 1명을 시설에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등록해 급여 명목으로 보조금 1억100만원 상당을 지원받아 빼돌렸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뿐만 아니다. 지난 8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비리는 뇌물거래와 횡령범죄를 위해 페이퍼컴퍼니까지 세운 사례다. 당시 성모씨는 연구원들에게 뇌물을 건네고 'RFID 기반 전자기기 생산공정관리 체계 구축' 과제를 따낸 뒤 정부출연금 13억4000만원 중 9억4000만원가량을 공장 증축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씨에게 사업권을 주고 뇌물을 받았던 연구원 3명은 친척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IT업체로부터 하청을 받는 것처럼 문서를 꾸민 뒤 이를 진흥원에 제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공적자금 관련 범죄가 이어지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공공재정 허위·부정청구 등 방지법'을 준비중이다. 이 법은 허위자료제출로 보조금을 가로채는 등의 범죄가 적발되면 횡령금액 환수는 물론 몇배에 달하는 징벌적 부가금을 징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범죄 혐의를 밝혀내도 부가금을 받아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범죄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게 권익위의 지적이다. 권익위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9월까지 수사기관에 이첩한 부패신고 사건 470건 가운데 270건(57.4%)이 보조금 횡령 관련 사건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