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사태로 홍역을 앓았던 국민은행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번엔 임금 협상과 관련한 노사 갈등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지난달 말 행장 직무대행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대치 국면을 연출했다. 이를 놓고 노조가 윤종규 회장 내정자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KB금융은 윤 내정자를 필두로 일련의 사태 후유증 치료와 재발 방지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한창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리딩뱅크의 위상과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구성원 모두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행태는 여전히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국내 금융산업의 후진적 관행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4월 우리금융을 시작으로 국내 금융지주사 시대가 개막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KB금융 사례처럼 현주소는 갈등과 반목의 역사다.
특히 수뇌부 간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주 회장과 행장의 갈등, 여기에 노조의 개입으로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전체 금융권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대한민국 금융지주사는 고질적인 지배구조 문제와 내부 통제시스템 부재로 통제 불가능한 덩치 큰 비만아로 전락했다는 말이 어울린다.
왜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일까. 이유는 간명하다. 주인없는 지배구조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핵심 키워드다. 낙하산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주도권 다툼을 반복하고 임직원들은 업무는 뒷전으로 한 채 자리 보전과 승진을 위해 줄서기에만 급급하다.
다시 말해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지 않은 지배구조 △은행 중심의 수익구조 △관치금융을 앞세운 인사 등 만들어낸 덩치 큰 비만아란 평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낙하산 인사가 들어올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한 경영승계 프로그램 등 후계자 양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기나 인사철만 되면 내부적으로 세력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은 후계자에 대한 밑그림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십중팔구 외부 입김에 조직이 흔들려 후진적인 금융 지배구조의 퇴행을 반복하게 된다.
현재 금융지주사별로 유명무실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다. 부사장과 부행장, 계열사 대표들을 중심으로 차기 CEO군을 키우게 돼 있지만 대부분 형식에 그치고 있다. 현 회장이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차기 회장을 논하는 것 자체가 반역에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대 금융지주 대부분이 차기를 이을 확실한 CEO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분야별 스페셜리스트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외환위기 이후 은행간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조직 내 이질감은 채널 문제를 비롯한 내부 갈등을 더욱 부추겨 그나마 몇 안 되는 인재들을 내몰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금융산업이 인재 기근에 시달릴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산업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 가운데 원로로 추대받고 있는 인사가 얼마나 될까. 과거 진행됐던 은행연합회장 선출 과정이 이를 방증한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등은 금융권에 괄목한 만한 성과를 남긴 금융인이었지만 연합회장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하나같이 불명예 퇴진의 낙인이 찍힌 결과다. 또 이명박(MB) 정권 시절 금융 4대 천황인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도 불명예 퇴진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씨티은행 차기 행장 선출구도는 우리 금융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영구 전 행장이 15년간 장기 재임했지만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박진회 현 부행장으로의 연속성이 확보된 것이다. 체계적인 CEO 승계 프로그램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