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꺾기 규제’가 오히려 중소기업과 저신용자의 대출 활로를 막고 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규제가 오히려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규제의 역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과도한 규제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은행법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개정해 은행권 꺾기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꺾기는 중소기업이나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예금·보험·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대출 실행일 전후 1개월 내 월 불입액이 대출금의 1%를 넘는 금융상품을 대출자에게 판매하면 꺾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대출 실행일 전후 1개월 내 중소기업이나 저신용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비율이 1%가 되지 않더라도 꺾기로 정했다. 월 불입액이 대출금액의 1%를 넘는 예금과 적금도 꺾기로 규정했다. 중소기업 대표자나 등기임원, 그 가족 등 관계인에 대한 꺾기도 함께 금지했다.
꺾기에 대한 과태료 상한선(5000만원)도 이번 개정안에서 없애고, 과태료 기준금액을 건당 2500만원으로 결정하되, 고의·과실 여부를 판단해 할인·할증하기로 했다.
금융위 측은 은행권이 대출고객에게 예·적금을 유도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보험·펀드를 강매하거나, 관계자에게 상품 가입을 유도하는 등 신종 꺾기가 증가하고 있어 이를 제재하기 위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소기업 등 제도 이용자들은 꺾기 규제 후 대출거래가 불편해졌다고 토로한다. 기업의 경우 주거래은행에서 급하게 운전자금을 대출받거나 기존 대출을 연장할 때마다 모든 등기임원을 쫓아다니며 일일이 개인정보 조회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만약 한 명이라도 한 달 내 가입한 금융상품이 있으면 대출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은행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무적으로는 거래기업이 다른 은행에 자금을 예치할 경우 여수신 통합관리가 되지 않아 대출기업의 실질적 현금 흐름을 파악할 수 없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며 “취지는 좋지만 규제 대상이 너무 획일화되고 단순화돼 은행과 대출 이용자 모두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