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는 두 나라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바로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이 기여하는 정도다. 양국 모두 전체 기업 수 중 중소기업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국민총생산(GDP)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반면, 독일의 경우 50% 이상이다.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이 경제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내고 있는 덕분에 독일은 유럽발 경제 위기에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독일 중소기업은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는 말로도 불린다. 미텔슈탄트는 중산층, 중류층(middle class)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던 19세기경, 독일 남부에 있던 영세 자영농들은 추가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도시로 이주하는 대신 지역에 남아 소규모 수공업을 병행하며 중산층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이들은 대량 생산방식 대신 소규모 특화 생산방식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했고, 훗날 한 가지 품목만으로 세계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는 ‘히든챔피언’ 기업의 모태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경제구조의 체질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지난 2011년부터 ‘월드클래스(World Class) 300’이라는 이름의 사업을 시작했다.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해 잠재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기술개발(R&D), 마케팅, 인력, 금융 등을 종합 지원하는 사업이다.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3~5년에 걸쳐 기술, 인력, 자금, 시장, 마케팅 노하우 등 기업이 단계별로 필요한 사항을 파악해 도움을 주기 때문에 수혜 기업 맞춤형 시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향후 성장 잠재력을 기준으로 기업을 선정하다 보니,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지역의 중소기업보다는 수도권에 있는 중견기업들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KIAT가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프리(Pre) 월드클래스 300’ 사업은 ‘지역’이라는 키워드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지역 내 중소·중견기업 중 잠재력 있는 유망기업을 선정해 월드클래스 후보기업군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R&D, 인력, 마케팅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형태는 월드클래스 300과 비슷하다. 다만 사업 초기에는 신제품 기술 로드맵 수립이나 해외시장 진출전략 기획 등 주로 기업의 글로벌 경쟁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된 기업의 관계자들이 직접 나서서 앞서 성장한 선배 기업으로서의 성공 사례와 위기 극복 스토리를 들려주고 경영혁신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가 뒤에서 밀어주면 멘토(월드클래스 300 기업)들이 앞에서 끌어주는 셈이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도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리는 강소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독일의 내로라하는 히든챔피언 중에는 본사가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주방칼 분야의 독보적 브랜드 헹켈(Henckels)의 본사는 뒤셀도르프이고,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등이 애용한 연필 제조업체 파버카스텔은 뉘른베르크에 있다.
이제는 지역에 있는 기업들도 내수 시장에 만족해선 안 된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뽐내겠다는 자부심, 세계인이 주목하는 제품으로 한 번 승부를 내보겠다는 도전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프리 월드클래스 사업은 지역에 있는 예비 히든챔피언 기업들이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훌륭한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지역 단위의 중소·중견기업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망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지역의 청년 인재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에서 세계로 눈을 돌리는 예비 히든챔피언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