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간중독’은 ‘19금 멜로’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14일 개봉과 동시에 8만9081명(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을 동원하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15일 10만명을 동원하며 할리우드 개봉작 ‘고질라’와 ‘역린’, ‘표적’ 등 경쟁작을 제친 ‘인간중독’은 현 시점에서 영화계의 가장 큰 화제작이다.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한류스타 송승헌의 노출신 만큼 눈에 띄는 것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임지연이다. 이 신인 여배우는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에서 연기 역량을 마음껏 선보였다.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달아 가던 1969년, 군 관사 내에서 김진평(송승헌) 대령과 금지된 사랑에 빠져드는 종가흔 역을 연기한 그녀는 20대 여배우 기근에 허덕이던 충무로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15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지연은 신비롭고 여성스러웠던 종가흔의 모습과 달리 털털하고 솔직했다. 90년생의 이 배우가 인터뷰 내내 보여준 작품에 대한 열정은 ‘연예인’이 아닌 ‘배우’의 향기를 진하게 내뿜고 있었다. 첫 노출 연기에 대한 질문에 임지연은 “그만큼 절실했다”고 말했다.
“노출이 부담 안 됐다면 거짓말이다. 신인이라 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베드신이 전부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울컥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대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스토리가 좋았다. 종가흔 캐릭터에 욕심이 났고, 배우로서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김대우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노출과 베드신이) 무섭기도 했지만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임지연에게 ‘인간중독’은 기회였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음란서생’, ‘방자전’으로 주목 받은 김대우 감독의 신작이었고, 송승헌이 상대역이었다. 종가흔이란 인물이 가진 매력도 풍부했다. 세 달 반 정도의 촬영 기간 동안 만 24살의 신예 여배우 임지연은 최선을 다했다.
“대본을 받고 연구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절실했다.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 잘 해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작품에 피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연기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작년부터 1년 가까이 참 힘들었지만 연기 인생에 있어 큰 터닝 포인트가 됐다.”
임지연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던 데는 상대역 송승헌의 역할도 중요했다.
“제가 신인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그런지 정말 잘해줬다. 한참 선배인데도 먼저 편하게 대해주시고, 장난도 많이 쳐주시는 등 불편함 없이 자상하게 배려해줬다. 송승헌 선배의 인터뷰나 방송을 보면 내성적이라고 스스로 얘기하는데 그 안에 자상한 면이 많다. 특히 특유의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다. 베드신에 있어 잘 빠져들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줬다. 잘 호흡했다. 스스로 ‘나도 힘들지만 여배우는 얼마나 힘들까’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감사했다.”
‘인간중독’을 본 대다수 관객들은 임지연의 팜므파탈 매력에 빠져들었다. 청순하면서도 내면의 아픔을 갖고 있는 종가흔은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결정적 장치였다. 그래서 실제 임지연의 성격을 알고 있는 그녀의 지인들은 영화를 본 후 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제 성격은 솔직하고 굉장히 털털한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동생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소탈한 면이 많다. 머리도 항상 짧게 자르고 다녔다.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말도 안 된다’며 놀란 반응을 보였다. 촬영할 때 김대우 감독과 ‘청순하면서도 고혹적인 여자를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말투, 표정, 눈빛에서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데 중점을 뒀다.”
임지연의 섹시함은 ‘색계’ 탕웨이와 비교됐다. 정작 임지연은 “탕웨이와 비교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영화의 분위기, 영상미를 볼 때 ‘색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탕웨이를 닮았다는 말을 듣게 될지 몰랐다.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촬영에 있어서 탕웨이를 염두하고 연기하진 않았다.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거나 그의 연기를 생각하면 따라하게 된다. 오히려 나만의 색깔을 잃어버렸을 것 같다. 멜로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봤지만 누군가를 정해놓고 따라하려 하지 않았다.”
비단 신인 여배우라서가 아니라 대다수 여배우들은 ‘이미지’를 강조한다. 여배우들이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 영화계 관계자들의 성토이다. ‘인간중독’ 종가흔은 예뻤지만 여배우로서 선택하기 쉽지 않았던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더욱이 신인 여배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스스로 긍정적인 편이다. 앞으로 내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은 안 해봤다. 그런 것들을 다 따지면 배우를 할 수 없다. 좋은 작품, 배우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호평과 혹평을 다 듣고 있는 상황이라서 감사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당근만 받아서는 발전할 수 없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기보다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인간중독’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언니가 참 냉정하다. 앞서 단편영화를 보고 한 번도 재밌다거나 칭찬해준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눈물을 흘리며 봤다고 하더라. ‘고마웠다. 잘했다. 수고했다’고 칭찬해줬다. 어머니도 영화를 보고 우셨다. 부모님이 영화를 선택하고 해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셨다. 그만큼 고민도 됐지만 부모님의 응원이 있어서 힘낼 수 있었다.”
임지연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꿈 많던 신인 여배우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지만 대중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첫 장편 영화 여주인공, 박스오피스 1위 등 항간의 관심에 대해 임지연은 “어안이 벙벙하다. 새롭다”고 말했다.
“전혀 실감이 안 난다. 아직은 영화를 어떻게 봐줄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이어서 그런지 연기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충무로에서 주목하는 여배우 임지연으로 불리며 자신의 연기를 세상에 보인 이 신인 여배우의 꿈은 한참 전부터 진행형이었다.
“배우의 꿈은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안 날 정도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손잡고 공연, 뮤지컬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럴 때면 나도 저 무대에서 배우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난 당연히 배우를 할 거고, 저 사람들처럼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그렇게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
‘인간중독’으로 주목 받은 만큼 임지연의 차기작은 정말 중요해졌다.
“신중히 보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좋은 작품, 좋은 역할로 기회를 주면 열심히 하겠다. 저 스스로도 차기작은 정말 중요하다. 종가흔과 다른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제 시작이다. 단단한 배우가 되고 싶다. 내적으로 배우가 가지는 단단함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