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은 운전자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길 안내는 도로 안내표지판 화살표와 행인이 던진 “이쪽으로 쭉 가면 돼요”라는 말 한 마디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면서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수고가 줄었다. 심지어 언제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지, 과속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알려주니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생생한 산업현장의 체험을 위해 창사 16주년을 맞은 국내 내비게이션 대표기업 ‘팅크웨어’를 찾았다.
◇80여 가지 까다로운 내부 규정 통과해야 ‘제품’으로 탄생= “제품 검증 작업부터 먼저 할까요?” 기자가 가장 먼저 투입된 곳은 검증실이었다.
‘제품이 정상으로 작동하는지 전원만 껐다가 켜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제품 낙하 시험을 시작하자 이내 사라졌다.
“그냥 떨어뜨리세요.” 강현석 품질보증실 팀장이 말했다. 낙하시험 기계 위에 내비게이션을 달고 1m 높이 위에서 사정 없이 떨어뜨렸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내비게이션이 떨어져 나뒹굴었다. 곧바로 “또 떨어뜨리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이번에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이번엔 ‘우당탕’ 소리 대신 묵직한 ‘퍽’ 소리가 났다. 이 정도 충격이면 LCD 화면에 금이 가든가 깨지는 것이 정상. 휴대폰 LCD를 몇 번 깨 본 기자는 그 느낌을 잘 아니까. 그러나 LCD 화면은 작은 상처만 났을 뿐 멀쩡했다. 제품을 켜 보니 부팅도 문제없었다.
그렇게 내비게이션을 낙하시험 기계 위 1m 높이에 매달고 정면, 모서리, 뒷부분 등 부위별로 달리해 총 6번을 떨어뜨렸다. 해당 시험에서는 제품의 파손 여부도 중요하지만 LCD가 깨지면서 파편이 튀는지가 무엇보다 우선이다. 최근 내비게이션 LCD 화면이 7인치로 커지면서 LCD가 깨질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화면이 깨져 파편이 튀면 사용자가 다칠 수도 있다.
이어 내비게이션 온도 검증 작업에 나섰다. 온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챔버(chamber)라고 불리는 전자레인지처럼 생긴 네모난 기계의 문을 열자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 쏟아졌다. “꽤 뜨겁죠?”라고 강 팀장이 묻는다.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한여름 에어컨을 튼 차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 챔버 안에 있던 내비게이션을 손으로 들자 ‘앗 뜨거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챔버는 온도 80도, 습도 95%의 환경을 만들어 24시간 동안 제품을 넣고 상태를 점검한다. 이 같은 온도 실험은 각기 다른 여러 개의 챔버에서 진행된다. 한 챔버 안에서는 제품 전원을 끄고 실험하고, 또 다른 챔버 안에서는 제품 전원을 켜고 온도별 부팅 상태를 시험한다. 한반도의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철 상황에서도 제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극한의 상황을 테스트한다.
강 팀장은 “상황에 따라 영하 20도에서 영상 60도, 영하 40도에서 영상 80도까지 단말기 부팅 상태, 작동 상태 등을 검증한다”며 “여름철 내비게이션·블랙박스의 고온 현상이 불거지면서 검증 과정은 더욱더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팅크웨어는 온도 테스트를 비롯해 충격, 전류, GPS 수신율, 압파시험, 변색시험, DMB 수신율 등 80여 가지의 까다로운 내부 규정을 통과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도로 위의 모든 것을 기록… 내비게이션 실사= 검사실을 나와 GPS 수신기를 장착한 지도 실사 차량에 올랐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조수석에는 나무 널빤지 위에 노트북 한 대가 올려져 있었다. 손때 묻은 오래된 널빤지가 팅크웨어의 지도 실사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판교 길거리로 나서자 노트북 화면에는 지도화면이 나타났다. 지도 위에 차량의 진행 방향이 화살표로 보였고, 건물명이 떠올랐다. 기자는 도로 주변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지도에 특이사항을 기록했다.
“잠깐만요!” 실사 차량을 타고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다. 노트북에 새로운 도로나 교차로를 비롯해 일방통행, 차선, 도로 폭 등 상세 도로 정보와 맛집, 백화점, 학교, 골프장, 휴양지 등 다양한 부가정보 등을 일일이 기입해야 했다. 여기에 건물 입구점, 상호명도 채워 넣느라 눈 돌리기에 바빴다. 눈동자와 목이 쉴 틈 없이 차창 밖을 휘젓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로 현지조사에서는 차선과 신호등의 위치, 좌회전 금지와 같은 회전 규제 등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전자지도에 잘못된 정보가 기입되거나 누락되면 운전자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의 제1 목적이 정보 제공이라면 제2 목적은 ‘안전운전 도우미’인 셈이다. 이 때문에 팅크웨어는 공사 중인 도로나 완공 도로 리스트를 뽑아 월 1회 정기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서툰 기자 때문에 실사 차량은 수시로 길가에 정차해야만 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도로교통 정보를 노트북에 적어 내려갔다. 창문 밖으로 목을 빼꼼히 내밀어도 상호명이 보이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려 직접 눈으로 건물 정보와 상호명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차에 오르내르기를 수십 차례. 한 시간여 이상이 지났지만 이동한 거리는 겨우 몇 블록 정도였다. ‘언제 도로를 다 도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촬영된 정보는 사내 PI(Point of Interest)팀에 일일이 전송된다. PI팀은 실사팀이 보낸 사진을 바탕으로 건물명 등을 지도에 업데이트한다. 놓친 정보는 캠코더 영상을 돌려 보며 다시 기록한다.
박현준 GIS개발본부 책임은 “차량 앞부분에 장착된 캠코더가 노트북과 연동돼 실시간으로 전면 상황을 녹화하기 때문에 놓친 부분을 나중에 다시 확인하며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있다”며 “어느 한 교차로 지점의 좌회전 금지 정보 하나만 입력돼 있지 않아도 수킬로미터를 돌아가는 길을 안내할 수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지도 정보를 입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도로와 건물 등 지도 데이터는 연간 20~30%가 바뀐다. 팅크웨어 실사팀은 바뀐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매일 7000km씩, 연간 160만km로 지구 4바퀴에 이르는 거리를 누비며 사진과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체험을 끝내며 무심코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이 이렇게 많은 과정과 수많은 사람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홍보팀 직원이 농담처럼 던진 말 한 마디도 귓가에 맴돌았다. “권 기자, 단언컨대 내비게이션은 가장 완벽한 운전 파트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