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유사 이래, 인간은 점술에 의존하고 전지전능한 신을 찾았다. 신과 소통하는 신관이나 제관은 통치자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자신에게 생길 위험이나 고난은 반드시 회피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 발생해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면서도 당하거나,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게 인생인가 싶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 관치인사 논란이 불거졌던 KB금융지주가 이번에는 KB국민은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신관치 인사 논란이 일면서 내홍에 휩싸였다. 예견됐던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덜하지만 볼썽사납다.
축제의 장이 돼야 할 회장 취임식은 계란이 날아다니는 난장판으로 변모했다. 노조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천막이 본점 입구에 등장했고 행장 퇴진을 요구하는 격한 격문이 곳곳에 나붙었다.
민간 금융사에 관치 인사가 낙점됐으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일. 더구나 KB국민은행 노조는 관치 인사 행장 선임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선임 강행시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까지 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다. 어찌보면 알면서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취임은 했으니 됐다”, “(취임식 같은) 요식행위가 뭐가 중요하냐”며 자위하고 있지만, 씁쓸함이 묻어난다. 후회막급이지만 방법이 없게 됐다.
KB금융은 어엿한 민간 금융사다. 그럼에도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엔 관치 악연을 끊나 했는데 역시나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모두 관치 인사로 채워지면서, KB금융은 ‘반관반민’의 성격의 지배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번 잃게 됐다.
이미 지주 최고경영자(CEO) 교체 과정에서 상당한 경영공백이 불가피했다. KB금융의 뿌리 깊은 밑바닥 정서를 대변할 수 없는, 2~3년 경력의 외부출신 인사 발탁이 가져올 경영상의 한계는 사실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KB금융은 지난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3위에 해당하는 성적표를 받았다. 은행 부문 쏠림 현상은 95%를 넘어서 심각한 상황이다. 총자산 규모도 하위권이다. 소매금융을 강화한다면서 리스크 분야의 전문가를 행장에 앉혔다. 엇박자도 한참 엇박자다.
KB금융은 최소 3년간 관치 악연을 이어가게 됐다. 3년간의 경영성과를 성급히 예단키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껏 관치가 보였던 성과로 미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기왕 관치 인사로 그룹 수뇌부를 구성했다면, 과거와 차별화되는 족적을 남기길 바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