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사회의 총아는 신용카드다. 신용카드는 발전과 퇴보가 교차하는 신용사회의 두 얼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타인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해서 시간적인 격차가 있는, 이른바 신용거래가 활성화 될 수 있었던 데는 신용카드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현금 없이도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자가 바로 신용카드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끌리는 매력을 넘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신용카드의 다양한 기능 중 무이자 할부는 기본이자 핵심 경쟁력이었다. 신용사회는 신용카드의 등장 이후 급격한 발전의 단맛을 봤다.
쓴맛도 있었다. 신용카드사의 무차별 경쟁으로 어지간하면 누구나 신용카드를 손쉽게 손에 쥘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신용카드 몇장을 가져야 기본인 세상이 됐다. 아직 신용사회에 대한 준비가 덜된 틈을 타, 신용카드는 소비가 미덕인양 무절제한 소비행태를 야기하며 카드빚을 양산하는 주범이 됐다. 신용사회가 신용불량자 때문에 신음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이용실적은 520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62조1000억원(13.5%) 증가한 수치다. 신용카드가 436조5000억원으로 단연 압도적이었다. 체크카드(82조2000억원), 선불카드(2조2000억원)는 비할 것이 못된다. 소비경제에서 차지하는 신용카드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올 들어 여론의 호된 질타 속에 철회됐던 무이자 할부 중단 조치가 다시 강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대형 가맹점과 카드사 간의 마케팅비 분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을 맞아 한시적으로 진행했던 무이자 할부 서비스는 오는 17일이면 전면 중단될 처지다. 무이자 할부가 이번에 끝나면 추가 연장은 어렵다는 것이 카드업계의 대체적인 입장이고 보면 신용카드 등장 이래 가장 큰 매력이던 무이자 할부 기능이 존폐의 기로에 선 셈이다.
카드사들은 어느새 준비했는지 무이자 할부 기능을 갖춘 카드를 속속 내놓고 있다. 기본기능이 특화기능으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이제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이 기능이 탑재된 카드를 새로 발급받거나 갈아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게 됐다. 이미 카드사들은 무이자 할부 특화카드 홍보에 나서고 있다.
카드사들은 무이자 할부 중단에 따른 고객불편 감소를 위해 추첨행사 등을 통한 무이자 할부 서비스 제공 등의 지원책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상시 무이자 할부 서비스에 미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 간의 힘겨루기에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됐다. 양측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소비자 불편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감독당국과 박근혜 정부의 해법은 뭘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