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를 맞이하는 장애인들과 관련단체 및 전문가들은 일단 지켜보자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새로운 정부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정치권의 변화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여야 후보 진영이 복지와 경제민주화 논의를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뜨겁게 달아올랐던 논의가 대선용 정치 구호로 멈춰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장애인 정책은 각당에서도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해 11월 ‘2012대선 장애인연대’를 구성해 직접 만든 12대 요구 공약을 각 대선 후보 측에 전달, 정책협약을 맺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투데이는 4명의 장애인 전문가들을 상대로 새로운 시대의 고민과 정책 과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급선무 =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현재 가장 큰 쟁점인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문하는 한편, 철저한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남병준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등급제는) 법적인 기준 자체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가 있으며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구시대적인 시스템”이라며 “그 자체가 ‘서비스 필요도’와 맞지 않을 뿐더러 의학적인 요인으로 구분하는 것도 인권침해다”라고 말했다.
남 실장은 “2011년 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13.9%가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전적으로, 혹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며 “등록장애인은 23만명밖에 안 된다. 더 많은 수가 활동지원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저마다 다 환경이 다른데 그것을 무시하고 1급이면 자격 있고, 2급과 3급은 배제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발달장애인 영역으로 가면 등급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라고 덧붙였다.
나사렛 대학교 부총장인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장은 이런 등급제는 결국 고용에 차별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 고용에서 우리나라는 쿼터제가 가장 강력한 제도다”며 “지적 장애인은 쿼터제에 들어가기 어렵고, 그렇게 들어가는 비중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문제는 단순한 장애 자체의 문제로 한정지을 수 없다. 장애인의 생활수준과 취업 의지, 취업하는 사업장의 위치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에서 고용하기 위해서는 구인과 구직이 눈높이가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은종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홍보국장도 지난해 11월 각 대선후보 진영에 전달한 12대 정책 요구와 관련해 “12개의 요구를 냈는데 등급제가 가장 크다. 특히 활동지원제도 자체도 기본적으로 등급심사를 받아야 한다”며 “등급제가 의료를 중심으로 가다보니 어느 정도 육체적·정신적 기능을 하느냐만 보고 환경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만을 잣대로 등급이 판정되기 때문에 서비스가 필요함에도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 구체화, 새로운 대안 모델 개발 필요해 = 박근혜 당선인이 펼칠 장애인 정책은 현재 밑그림조차 없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복지정책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고용정책은 더욱 절망적이라며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김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 롤 모델은 구체적으로 나온 것이 없다”며 “또 새누리당의 안은 내용이 빈약하다. 내용이 담보되고 프로세스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노년에 접어드는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생 후반의 장애인들, 특히 65세 이상 장애인들이 38% 정도 되는데 이들에 대한 어떤 대책도 없다”며 “현재 정책도 없고 만들어 내는 것도 없다. 앞으로가 걱정된다”고 밝혔다.
은 국장은 장애인의 고용 안정을 강조하며 “최근 신문 기사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돈을 적게 받더라도 안정적인 곳이라고 하던데 장애인의 고용 안정은 더욱 절실하다”고 전했다. 그는 “여러 사정으로 일자리를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 건강상 문제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데 그런 것들이 안 되다 보니 고용 장려금을 받게 된다”며 “문제는 해마다 고용장려금이 준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남 실장은 “장애인 복지는 점차 정부 지원이 확장하는 국면에 놓여 있다”며 “다른 나라는 소득보장을 하고 실제로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스템을 바꿔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역시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지원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실에서 관련단체 전문가들은 정부가 손 놓은 대안모델 개발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증장애인 아웃소싱형 유연고용 모델’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수행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용역서비스를 제공받는 민간·공공기관에게는 수행기관을 통해 용역을 제공하는 중증장애인 수의 0.5배를 채용한 것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9월 이와 관련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변경희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교수는 “모델의 취지는 고용이라는 측면에서 중증장애인을 제대로 보자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비정규직 확산과 기업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변 교수는 또 “많은 지체장애인이 표준사업장에서 힘들게 일해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연금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자립할 수 있는 생활비가 나와야 한다. 때문에 고용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제도 개혁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원장은 “개혁하지 않으면 행정비용에 돈이 다 들어간다”며 “전문가 개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부처 간 갈등구조로 만들면 안 된다. 전문가들이 개입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