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연어 이야기

입력 2012-07-0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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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호 KCB연구소 실장

지난 주말에 지인들 몇이랑 강원도 평창에 있는 고향 마을로 천렵(川獵)을 다녀왔다. 집 앞 강은 아직도 쉬리와 다슬기가 살고 있는 청정한 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버지는 미리 물고기랑 다슬기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당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다 늙어서 뭐 하러 돌아오냐?’는 아버지와 내 나이의 중간쯤인 육촌 누나의 농담같은 힐문에 당신은 연어 이야기를 하셨다. 연어는 먼 바다를 여행하고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육촌 누나 왈, ‘그래, 이제 다 돌아다니셨수?’

식민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전쟁과 가난, 젊은 날의 방황, 여러 번의 흥망, 그리고 두 번의 상처(喪妻). 역마살이 낀 긴 여로를 지나, 인생의 황혼에 이제는 당신이 태어난 그 곳으로 돌아가서, 흙과 함께 살면서 힘든 인생의 마침표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내게 물려준 가난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난 아버지를 참 많이도 원망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술주정이 너무 싫어서,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의 흰 머리와 이마의 주름을 대하면, 무거운 인생의 짐을 나누어 드리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년에 몇 번밖에 못 찾아뵙지만, 어쩌다 내려갈 때면 항상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신다. 옥수수, 감자, 배추, 고추가루 같이 직접 농사지은 것들은 물론이고 철 따라 드릅이며 다슬기 같은 것들도 잔뜩 채취해서 가져가라고 하신다. 너무 많아서 다 못 먹는다고 하면, 사돈댁도 좀 가져다 드리라고 차 트렁크에 바리 바리 실어주신다. 집 뒤뜰에 통나무를 잘라다가 버섯을 키우고, 집 옆에는 포도나무랑 감나무, 복분자 나무를 심고는 내년에 내려오면 따 주겠다고 흐믓한 표정을 지으신다.

워낙 강골이기에 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정하시지만, 가끔 전화하시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음을 느낄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오느라 힘이 다 빠진 연어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아버지를 보면 내 자신의 모습이 거기 있음을 본다. 역마살이 낀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는지, 나 역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산 적이 없다. 기억도 나기 전에 고향인 평창을 떠나서 중학교는 정선군 탄광촌에서 보내고 고등학교는 강릉에서, 대학교는 서울에서, 대학원은 워싱턴 DC에서 유학을 하고 지금은 다시 서울에 돌아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연어의 일생으로 보자면 먼 바다에 나갔다가 태어난 물로 돌아가는 귀로에 있다고나 할까.

올해는 여름 휴가 대신에 가을에 아버지랑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한다. 아직 한 번도 아버지랑 같이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비행기도 한 번 태워드리고, 어쩌면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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