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민단체의 정치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운동가들의 정계 입문뿐 아니라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민단체가 본래의 목적을 잃고 정치 등용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인다.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가 아래로부터의 정치운동이 아니라 시민단체 지도자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철저하게 비정치적인’이라는 슬로건에서도 드러난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나 직접 출마보다 공약 평가나 정책 협약 등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했을 뿐이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진행한 낙천·낙선운동을 기점으로 이 같은 태도는 달라진다. 총선시민연대는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퇴출 대상자 86명 가운데 59명을 낙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2002년부터 환경운동연합의 김혜련 활동가가 전국 최연소 의원이 되는 등 시민운동가의 정계 입문 러쉬가 이어진다.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치참여는 2011년 시장선거를 기점으로 진일보했다.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장에 당선되면서 시민단체 자체가 중요한 정치세력이 된다. 기존 정치권과 손을 잡지 않고 독자적으로 정치 세력을 만드는 등 비판자에서 벗어나 참여자로 적극 나서고 있다.
◇뱃지달면 시민운동 출신도 결국 정당인= 시민단체가 직접 정치권에 뛰어드는 이유는 정당이 시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정치 참여를 하는 것과 제도권 내의 정치 참여는 엄연히 다르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시민단체 인사가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은 곧 정당에 들어가는 이야기와 같다. 자발적인 방식의 정치 참여가 아닌 권력 투쟁이 이뤄지는 곳이므로 시민운동 정신의 구현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 새로운 피 수혈은 바람직하지만 정책 실현을 위해 시민운동가가 정치인이 되는 것은 정계 입문의 구실이라는 것. 조 교수는 “시민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활동 방식과 정당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시민운동가 출신일지라도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이면 대부분 정당논리에 흡수되버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존 정치권에 들어가 성공한 모델은 찾기 어렵다. 활발하게 시민운동을 펼쳤던 인사들이 뱃지를 달거나 정부 인사로 편입되면 시민운동가적 면모를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감세와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 출신이지만 현재 MB맨으로 불리며 철저히 정당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반대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감시는 누가하나= 시민단체가 직접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경우 시민활동이 위축된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소액주주운동, 재벌개혁, 부동산실명제 등 정부 비판 및 자본 견제는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하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국가와 개인사이에 무수한 단체가 존재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목소리를 내는 몇 개의 단체만 있을 뿐 이마저 정치 참여로 역할이 작아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치권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것과 시민사회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다르기에 시민단체가 현장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사회 내의 소소한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시민운동가가 “최근에 도시계획문제와 관려해 서울시정에 참여하게 됐지만 밖에서 서울시 정책 문제를 모니터링 하는 것과 달리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 교수는 “시민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시민운동가가 감시·비판자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민활동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시민단체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 없지만 아직은 직접 정치 참여보다 시민사회 역량을 더 키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