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구로에 최초의 공업단지인 한국수출산업공단(현 서울디지털단지, G밸리)이 설립됐다. 노동집약적 경공업 중심의 구로공단은 '한강의 기적'을 탄생시켰으며 특히 수출 부문에서 상당한 저력을 보여주며 성장 가능성을 확신시켜줬다.
당시 농경지를 개발해 공장들을 세워 생산된 제품을 해외로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였던 수출산업공단은 국가 전체 수출 규모의 10% 이상을 점유하는 등 국가적인 면에서 ‘가난한 집의 복덩이’ 같은 존재였다.
◇ 최초 수출 업체 탄생 그리고...
동남전기공업은 당시 13만 9893달러 규모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첫 스타트를 끊었다.
당시 수출산업공단은 수출 전망이 좋은 약 20여개 국내 기업들이 입주한 상태로 동남전기공업의 첫 수출실적은 공업단지 수출 활성화 뿐 아니라 일본 진출의 교두보 마련의 계기가 됐다.
1960년대 초반은 현대 한국경제사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초기근대화를 향한 범국민적 개발의욕과 함께 국민경제의 도약적인 발전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집적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부존자원 빈약, 국내시장 협소, 민간기업 취약, 자본 부족, 과잉인구, 낮은 기술수준 등 매우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외지향적 정책을 마련했다. 즉 국내시장이 수출을 통한 성장만이 방법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한국수출산업공단은 1963년 법적 뒷받침 없이 거대한 공업단지를 운영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한국수출공단법을 제안했다.
이에 수출산업공단은 수출 진흥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됐다는 법적 근거 아래 △공업단지 조성 △해외교포기업 국내 유치 △외자 및 기술도입 추진 등 각종 수출산업진흥에 필요한 부대사업이 가능하게 됐다.
◇ 전국 수출의 10% 점유...공단설립 7년 만에 1억달러 달성
수출산업공단 역시 제1,2단지 입주기업체의 완전가동과 제3단지 입주기업체에 대한 지원강화 차원에서 1971년도 수출목표를 1억 1200만달러로 책정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공단은 입주기업체 시설확장 및 가동 촉진을 위해 106개 업체에 21억 8900만원 규모의 시설 및 운전자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정부 및 수출유관 기관장들도 초청해 애로사항 및 문제점 해결에 주력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71년 1억 1428만 9000달러를 수출해 102%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설립된 지 7년 밖에 안된 중소공업단지에서 이뤄낸 유래 없는 쾌거다.
1971년 당시 정부 수출액이 10억 달러 조금 넘은 것을 감안하면 이는 10% 이상의 점유율이다. 정부가 제1차 경재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한 1962년 이후 15년인 1977년에 수출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20배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던 당시 공단 역시 10억 달러 수출을 초과 달성했다.
그 후 1980년도에 18억7400만달러를 수출하기까지 공단은 연평균 31% 수출성장률을 보이였다. 가장 많이 성장한 해는 1976년으로 9억4500만 달러를 수출했다. 이는 전년 실적(5억4500만 달러) 대비 73.4%의 증가된 수치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11월 기준) 총 수출 24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편 초반 공단발전의 결정적 계기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도 한 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무려 아홉 차례에 걸친 방문과 한차례 친서를 통한 지시를 했다.
그는 방문을 통해 단지조성사업 진척사항과 입주기업체 대표자들을 만나 애로 및 건의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조치토록 했다. 1967년 9월에는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개최장소로 공단 제2단지를 지정하기도 했다.
산단공 관계자는 “이와 같은 통치권자의 절대적인 관심과 지원에 힘입어 한국수출산업공단은 우리나라 제 1의 공업단지관리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수출 트렌드 변화...굴뚝에서 첨단으로
1962년 당시 우리나라 수출액은 5500만 달러로 산업별 수출 비중은 농수산품이 45%, 광산품 28%, 공산품이 27%로 1차 산품이 73%를 차지했다.
1964년 공단이 설립될 당시에는 선진국에서는 사양 산업으로 여겼던 노동집약적인 산업과 경공업중심으로 한 섬유, 봉제, 전자, 잡화 등의 비중이 컸다. 제1단지와 제2단지가 가동되던 1969년에는 섬유 봉제업종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했다.
섬유, 봉제업종은 12년동안 연간 수출액의 평균 44.4%를 차지해 10년 동안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공단 수출의 주력업종이었다.
특수 업종으로 분류할 수 있었던 가발업종이 1969년 3위 1970년 1위(37.8%), 1971년 2위(21.6%)를 차지해 1970년을 전후해 호황을 누렸던 업종으로 기록됐다.
전자, 전기업종은 1974년 38.5%로 1위를 한 적은 있으나 12년 평균 27.3%를 차지했고 1975년 이후로는 32% 이상을 차지해 섬유업종에 이어 공단수출 주력상품이 됐다.
2000년도에 들어서는 전기전자 수출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2005년 5월 LG전자 생산라인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연구소 체계로 변경되면서 수출액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휴대폰 시장이 성황을 이루면서 대기업에 납품 부품 업체들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G밸리 전기전자 분야 수출액은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한편 식품업종은 4단지 입주기업체인 동서식품과 한일식품등이 입주하면서부터 수출이 시작됐다. 1972년 이후 1980년까지 수출액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0.1% 수준에서 머물렀다.
1980년도 수출중 종이, 인쇄업종은 1.1%를 차지했다. 이는 1978년부터 시행된 공업단지관리법에 의해 내수업종도 입주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이뤄진 수출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