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나가수’ 사회

입력 2011-03-29 11:09 수정 2011-03-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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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 부국장 겸 증권부장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74초 후 폭발하자 주식투자자들은 우주왕복선 발사 계획에 참여한 주요 기업 4곳의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폭발 21분 후 지상보조장치를 만든 록히드 주가는 5% 하락했고 외부 연료탱크를 만든 마틴 마리에타는 3%, 본체와 주 엔진을 만든 록웰은 6% 떨어졌다.

문제는 고체엔진 추진로켓을 만든 머튼 티오콜이었다. 이 회사는 투매가 일어나 거래가 정지됐다. 투자자들이 챌린저호 폭발의 원인을 고체엔진 추진로켓에 있다고 본 것인데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폭발 6개월 후 챌린저호 사고조사위원회는 티오콜이 만든 추진로켓의 O-링이 차가운 곳에서는 유연성이 감소해 뜨거운 연료가 새어 나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대중의 지혜》라는 책에 나온 내용으로 평범한 대중들이 얼마나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가 화제다. 심사위원들이 내린 결정을 번복시키고 새로운 룰(Rule)을 만들자 시청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결국 새로운 룰을 만들어 반칙을 범한 PD는 사퇴하고 새 룰의 수혜자인 가수 김건모는 서바이벌 게임을 포기했다.

이 프로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은 건 서바이벌 심판관인 심사위원단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론은 반칙을 범한 가수 김건모에 주목했지만 필자는 심사위원단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각계각층에서 구성된 500명 심사위원단의 눈과 귀는 정확하고 냉정했다. 챌린처호 폭발원인을 가장 먼저 간파한 투자자들처럼 그들은 독립적인 판단으로 떨어질 사람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500명 심사위원단은 ‘평판’ 이란 선입관도 배제했고‘선배’라는 이점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로지 무대에서 보고 들은 내용만 판단 근거로 삼았다.

‘나가수’가 게임의 룰만 지켰다면 그런대로 볼만한 서바이벌 연예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자가 의도했건 아니건 어느 순간 정치적인 프로그램으로 전락했고 이를 본 시청자들이 화가난 것이다.

‘나가수’ 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금 한국사회는 국민들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게임의 룰이 무너지고 있다. 정치권은 교묘한 명분을 내세운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정치논리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상대방의 발목을 잡기 위해 자신들이 내건 사안을 휴지처럼 버리려하고 있다. 정부 부처는 이미 룰을 무시했기에 폐기해야 할 정책을 놓고 티격태격 논쟁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은 어떤가. 주주와 투자자들이야 어떻게 되건 감탄고토(甘呑苦吐)식 경영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며 제살길만 찾고 있다. 금융당국도 예외는 아니다. 증권사에 허가해 준 상품을 반나절 만에 판매 중단시키고 특정 상품에 대해 이미 받은 수수료를 돌려주라고 반강압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시장을 무시하며 억지정책을 쓰다 역풍이 일자 뒷북 대책을 내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인사가 만사’ 라는 데 인맥과 연줄로 이어진 이른바 ‘김건모 구하기’ 식 인사가 판을 치고 있다. 이쯤되면 우리 사회가 ‘나가수’ 확대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국민(대중)들은 ‘나가수’ 심사위원단처럼 지켜보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중이 내린 평가를 곡해하거나 왜곡시키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나가수’ 심사위원단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결정을 내렸듯이 이 사회의 심사위원단도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70~80년대의 저항하는 대중도 아니고 90년대의 아날로그 대중도 아니다. 정보의 장벽이 허물어진 시대에, 대중들은 그 어느 때 보다 지혜로워졌다. 그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지속적으로 자기정화를 해 나가며 사회를 진단하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중의 지혜, 즉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거대한 산업으로까지 떠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고리타분한 얘기 같지만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게임의 룰을 어긴다면 ‘나가수’ 사태가 현실이 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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