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을 사랑한 여인... 리움 관장 복귀 초미의 관심
재계의 퍼스트레이디, 국내 미술계를 움직이는 파워 인물 1위. 홍라희(65)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홍 전 관장은 국내 최고 재벌그룹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아내로서 유명세를 탔지만, 스스로도 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2008년 4월, 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삼성 특검’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본인의 퇴진을 포함한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장의 은퇴도 포함됐다. 당시 삼성이 발표했던 경영 쇄신안 가운데 나머지 항목은 모두 지켜지지 않았지만 홍 전 관장의 은퇴 만은 지금껏 지켜지고 있다.
지난 3월 이건희 회장이 경영복귀를 선언했을 때 국내 언론들은 이 회장의 경영복귀와 함께 홍 전 관장의 복귀 여부를 전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또 리움이 지난 8월 2년여 만에 기획전을 개최하자, 홍 전 관장의 복귀설이 다시금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홍 전 관장은 자유당 정권 시절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딸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의 누나이다.
홍 전 관장은 지난 1967년 이건희 회장과 결혼한 뒤 내조에만 힘써왔다. 하지만 자녀 넷을 출산한 이후인 지난 19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섰다.
이후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와 이사장, 그리고 호암 미술관장에 이르기까지 삼성 내 미술과 관련된 직책을 두루 거쳤다.
미술은 홍 전 관장의 인생 그 자체이자 삼성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 홍 전 관장이 시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게 처음 인사를 한 곳도 국전 전시장.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전시장을 방문하자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은 홍 전 관장에게 “이병철 회장을 모시고 국전을 안내하라”라고 말했다. 당시 홍 전 관장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차원에서 고 이 회장을 안내했지만 이 자리는 고 이 회장이 셋째 며느리감을 처음으로 선을 보는 자리였던 셈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미대 출신인 홍 전 관장을 일찌감치 며느리감과 미술전문가로 키우겠다고 점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혼시절 홍 전 관장에게 매일 10만원을 주면서 인사동에 가서 골동품을 사올 것을 지시한 것은 미술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한 안목 키우기였던 셈이다.
삼성특검을 촉발한 김용철 변호사도 그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서울대 미대를 나온 홍라희는 패션디자인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의 캐디 유니폼을 직접 골라주기도 했다. 해마다 제일모직의 여성복 디자인도 홍라희가 직접 결정해 준다”고 기술했다.
홍 전 관장은 최근 미술과 관련된 대외 행보를 다시 활발하게 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20 정상회의와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기획특별전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일에는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적십자 바자회’에도 참석했다.
최근의 이같은 행보에 리움미술관의 경영을 다시 맡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로 내조 톡톡=최근 이건희 회장은 해외일정을 소화할 때마다 부인 홍라희 여사의 손을 꼭 잡고 다닌다. 전략기획실이 존재하던 그룹 회장 시절에는 김 준 비서팀장(현 삼성전자 전무)와 홍 전 관장이 번갈아가면서 이 회장을 보좌했다.
한국경제에서 이건희 회장이 차지하는 위상이 있기 때문에 이 회장의 출국장에는 항상 기자들이 붐빈다. 삼성을 포함한 한국경제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세례가 쏟아지면 홍 전 관장은 조용히 한 발자국 물러나 이 회장이 편하게 기자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또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도 이 회장의 옆자리를 스스럼없이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에게 양보했다. 그는 세 부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뒤따랐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홍 전 관장은 이 회장을 보좌할 때에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다소곳한 모습을 보이지만, 미술계에서 활동할 때에는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