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공급기업의 부당 공동행위(담합)에 대해 6689억원의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E1, GS칼텍스 등 제재를 받은 기업들이 담합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어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사상 최대 과징금 6689억원 부과
자진 신고자(리니언시)에 대한 과징금 면제분을 감안하면 실제 부과금액은 4093억5000만원이다.올해 7월 리베이트 제공 등 불공정거래 혐의로 과징금 2600억 원을 부과받은 휴대전화용 반도체칩 제조업체 퀄컴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담합기간에 LPG를 수입하는 E1과 SK가스의 평균 프로판 판매가격은 ㎏당 각각 769.17원, 769.16원으로 불과 0.01원밖에 차이가나지 않았다. 이 기간 E1과 SK가스의 평균 부탄 판매가격도 ㎏당 각각 1162.31원, 1162.32원으로 역시 0.01원 차이에 불과했다.
석유정제 과정에서 LPG를 생산하거나 수입사에서 물량을 공급받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의 ㎏당 LPG 평균 판매가격도 2원 이상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공정위는 담합기간에 6개 LPG 업체의 판매가격에 미세한 차이 밖에 없었는데 이는 총 72회에 걸쳐 판매가격 관련 정보교환을 했을 정도로 담합이 관행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E1에 1894억 원, GS칼텍스에 558억 원, 현대오일뱅크에 263억 원, 에쓰오일에 385억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반면 담합사실을 1순위로 자진 신고한 SK에너지(1602억 원)의 과징금을 100% 면제하고 2순위로 신고한 SK가스(1987억 원)는 50% 감경했다.
E1에 대해서는 검찰고발 조치도 취해졌다.
손인옥 공정위 부위원장은 "수입을 담당하는 2개사가 매월말 상호협의해 다음달에 적용할 LPG가격을 결정하고, 이를 4개 정유사에 통보하면 정유사는 이를 적용하는 방식이었다"면서 "이번 담합으로 직접적 피해를 당한 계층이 서민층 수요자들이란 점에서 담합의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사상 최대 과징금 어떻게 나왔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가격담합과 같은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매출액의 10%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담합기간 동안 관련된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만큼 담합기간이 길면 과징금 규모도 불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담합기간 동안 올린 관련 매출규모가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같은 기간 LPG 판매량이 17%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담합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법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면 최대 2조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일부 감경 등을 감안해 최종 과징금 규모는 6689억원으로 정해졌다.
손 부위원장은 "심사보고서에서 심사관이 제시한 과징금보다 낮춰진 것은 회사들의 부담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일부 회사의 경우엔 과징금 부과율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어떤 회사들은 7%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고, 어떤 회사들은 5%의 부과기준율이 적용됐다는 것이다.
손 부위원장은 또 "일부 작은 회사들의 경우엔 단순가담했다는 점과 회사 부담능력도 고려돼 감경조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행정소송 하겠다"…LPG업계, 반발
그러나 LPG 공급기업들은 3~4년치 영업이익 규모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은 만큼 가격 담합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국내 LPG 가격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가 국제 LPG 가격을 통보하면, 통상 매월 말에 수입가격과 환율, 각종 세금, 유통 비용 등을 반영해 다음 달 공급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인 만큼 시장의 특성상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 없어 담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LPG업체 관계자는 "담합한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이의 신청을 하거나 행정소송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는 없으나 개별적 혹은 집단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LPG업체 관계자도 "최종 심사 보고서를 받아본 뒤 법률적 부분 등을 검토해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SK에너지와 SK가스가 '리니언시'를 통해 법에 보장된 혜택을 받은 것이지만, 담합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누렸던 업체들이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을 대폭 감면받았다는 점에서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