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 내고 국민 참여해 숙의 거쳐
정권 바뀌어도 꾸준히 개편해 완성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영국에서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간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담은 이 보고서 덕분에 전쟁의 포화 속에 있던 영국인들은 전쟁이 끝나면 복지국가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흔히 연금개혁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한다. 매우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어서다. 영국은 1946년 베버리지 국민보험, 1979년 대처 정부의 복지개혁, 1997년 토니 블레어 정부의 연금개혁 등을 거치며 꾸준히 연금제도를 가다듬었다. 도입 반세기도 되지 않은 한국 국민연금의 갈 길을 찾는 과정에서 영국 연금의 숙성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초로 1948년 국민보험법을 제정하며 65세 이상 모두를 포괄하는 노령연금을 도입했다. 노령연금으로 노후 생활 유지에 모자란 액수를 지급했는데, 이는 ‘국가는 인간다운 생활 유지에 필요한 최소 급여만을 제공하고 그 이상은 시민 각자가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베버리지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석유파동이 발생한 1970년대 물가 및 실업률 고공행진을 거쳐 1976년 외환위기를 맞게 되자, 영국은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과 복지제도 축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1979년 출범한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는 공적연금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직역연금과 개인연금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사적연금 역할을 강화했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정부의 등판으로 노동당은 18년 만의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2002년 여름 블레어 총리는 총리실, 재무부, 노동연금부의 추천 인사 3명으로 연금위원회를 구성해 노후대비 상황을 분석하고 연금개혁의 방향성을 담은 백서를 발간했다. 국민 의견 수렴도 진행됐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의 백미는 백서가 발간된 2006년 3월18일 열린 ‘전 국민 연금의 날’이었다. 런던과 버밍엄, 뉴캐슬, 사우스웨일스, 글래스고, 벨파스트 등 6개 도시에서 시민 1000여 명은 이날 종일 연금을 주제로 토론의 꽃을 피웠다.
토론을 전후로 여론조사도 이뤄졌다. 토론 전 조사에서는 연금제도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 가령 노인 빈곤은 싫으면서도 세금을 올리거나 연금연령 상향에는 반대했고, 노후를 위해 저축하기보다는 당장 돈을 쓰며 잘살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길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치면서 개혁 비용과 부담을 감내하고 수급연령 상향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과정을 반영한 연금위원회 권고사항은 이후 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초연금의 연동방식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2007년 평균 임금소득 증가율로 바꿔 실질 가치를 높였다. 이와 함께 공적연금 수급연령을 2026년 66세, 2036년 67세, 2046년 68세로 점차 높이는 한편, 자녀 양육이나 직업훈련 기간 등 불가피하게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크레딧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했다.
2008년에는 기초연금 연동방식을 평균 임금소득 증가율에서 평균 임금소득 증가율(매년 5~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5%(정부가 정한 최소 연금급여 상승률) 중 가장 높은 수치에 연동시키는 삼중잠금장치(triple lock)를 도입했다. 2014년에는 공적연금의 수급연령을 2036년 67세로 올리도록 한 계획을 2028년으로 앞당기고, 6년마다 연금수급 연령의 적정성을 검토해 기대수명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여러 차례에 걸친 연금개혁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갖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했다. 0층에는 연금수급자의 주소득이 25만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을 채워주는 연금크레딧, 1층에는 16세 이상 67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신국가연금(기초연금), 그리고 2층에는 기업연금이 있다.
영국 연금개혁은 시기별로 본받을 만한 대목이 많지만, 특히 연금위원회가 연금개혁 백서를 펴낸 날을 전 국민 연금의 날로 삼아 국민 차원의 숙의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를 후속 정부에서 지속해서 완성해 나간 것은 연금개혁을 앞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