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현대사 성장에 발판 놨지만
최근 안보·경제관 변화흐름 우려돼
조선이 일본에게 주권을 상실한 사건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하다. 1911년 조선의 1인당 GDP는 일본의 46.2% 정도였다. 이 정도의 상대적인 소득을 누리던 국가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당한 역사는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망국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지도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을 가장 먼저 꼽을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지나친 중앙집권의 국가에서 그 중앙이 허물어지면 하루아침에 망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조선이 망하는 사건은 나라에 존재하던 수많은 전통의 해체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왕정은 부정되고 공화국을 선언한 것은 아마도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기 있게 선언한 공화정을 우리 스스로 이루어낼 수는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난망이 아니었을까. 외국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허약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이념이 혼재되어 지도적인 조직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누구는 무장투쟁이고 다른 누구는 교육을 통한 해방을 추구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구는 외교에 사활을 걸고 있었던 것이 보여주듯 임시정부가 지향하던 공화국은 도대체 정체가 불분명하였다.
그와 같은 혼돈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의 현실이 되었다. 공화국이라고 하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소련식이든 중국식이든 미국식이든 뭐든 좋다는 분위기였다. 여론의 70% 이상이 사회주의를 원했다는 당시의 한 여론조사는 그와 같은 분위기와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역사의 전환이 일어난 것은 남과 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군하면서부터였다. 남의 나라 군대가 들어와 통치를 하겠다는데 그 누가 달가워할 수 있겠는가만은 지금 돌이켜보면 미군의 남한 진주는 대한민국에는 행운이었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시 해방 조선은 나라를 세울 여력이 없었다. 남한에서 해방 후 가장 먼저 정치적인 선점을 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런 세력이 주류를 계속 형성하는 것을 방치했다면 한반도는 지금 통일된 나라일 것이다. 물론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겠지만. 경제는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일본이 놓고 간 생산시설은 해체되어 팔리고 그나마 산업과 발전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있었다. 미군정 당시 국가재정에서 조세가 차지한 비중은 고작 12%였고 나머지는 미국의 원조로 충당되었다. 지도자들은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그런 해방 조선을 대리 통치한 것이 미군정이었다. 미군정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진력했다. 그리고 단순화해서 말하면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공산세력에 맞설 수 있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인재도 자금도 없었다. 미군정 시대 엄청난 교육투자는 미군정이 인재의 부족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일제의 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으나 사정이 그와 같으니 능력이 있으면 총독부 말단 관리였건, 관동군의 하급 장교였건 데려다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미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의 핵심에는 안보와 경제가 있다. 이 두 가지를 빼고 미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개입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를 위해 막대한 원조를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눈앞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청년교육, 관료의 양성, 언론인의 배양, 군인의 훈련 등 지금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는 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매우 많은 것들이 미국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미국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과의 동맹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 정치상황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안보 및 경제에서 대한민국의 성장에 그토록 기여했던 미국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신념도 흔들리는 것 같고 미국 우선주의가 점점 득세하고 있다. 미국의 등에 기대어 오늘을 이룬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곰곰 생각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