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향 기업이 상향 기업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상반기에 등급 조정이 이뤄진 기업 수가 지난해 전체 (하향 ) 개수에 육박합니다.” (신용평가사 B 관계자)
최근 기업 신용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고환율에 원자잿값·금융비용 상승 등으로 기업 실적까지 악화하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발생한 무더기 등급 강등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요즘 각 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은 하반기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기업 실적과 신용 악화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반영한다. 석유화학과 디스플레이, 유통, 게임 등이 위기에 빠졌고 건설 산업은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이‘BBB’인 이수화학은 최근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효성화학의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BBB+)’에서 ‘부정적(BBB+)’으로 바뀌었다.
부정적 등급 전망은 향후 6개월 내에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차전지·반도체용 화학 소재 업체인 SKC는 한국신용평가 평가에서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A+)’으로 하락했다. 프로필렌 제조사인 SK어드밴스드의 신용등급도 ‘A-(안정적)’에서 ‘A-(부정적)’로 하향됐다. LG화학은 S&P등급 평가에서 등급전망이 ‘부정적(BBB+)’으로 하락했다. 석유화학업체 여천NCC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한신평)에서 ‘부정적’으로 하향됐다.
유통기업들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기업평가는 NC백화점과 뉴코아아울렛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들어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강등했다. 롯데하이마트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국내 신용평가 3사가 매긴 신용도가 AA급에서 A급으로 떨어졌다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 컴투스, 펄어버스 등의 신용등급 및 등급전망도 수직강하했다.
실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신용평가업계 3사가 상반기 신용등급 및 전망을 포함해 신용도를 하향한 기업 수는 상향 기업의 최대 3배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한 신용평가업체의 정기평가는 상향 기업이 2곳에 그치는 반면, 하향 기업 수는 17곳까지 치달았다. 해당 평가사의 지난해 연간 상향 기업이 4곳, 하향 기업이 7곳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기업 신용도 하향이 유독 빗발치는 셈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하반기에도 우량·비우량 등급 스프레드 축소가 이어지면서 양극화 완화가 예상된다”면서 “금융기관과 건설사의 충당금 설정과 손실 인식 규모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지만, 예견된 리스크라 제2의 레고랜드 사태와 같이 회사채 시장 경색 국면은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은 웃돈(높은 금리)을 주고 채권(회사채)을 발행해야 한다. 자금 조달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하반기 회사채 만기도래액은 24조4028억 원이다.
신용평가사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 하향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 기업은 조달금리 상승 부담이 높아지고, 차환 시 이자비용이 늘어나게 된다”면서 “돈을 벌지 못해 신용등급이 강등된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오르면 재무구조가 악화해 추가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