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사망한 참혹한 현장…화성공장 화재, 인명피해 왜 커졌나 [이슈크래커]

입력 2024-06-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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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10시 30분께 경기 화성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22시간여 만에 완전히 진화됐습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25일 오전 8시 48분을 기해 아리셀 공장 화재 진화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는데요. 소방당국은 상황 판단 회의 결과 연기가 보이지 않아 화재가 재발할 위험이 없다고 보고 이같이 판단했죠.

그러나 사고가 완전히 수습된 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은 이틀째 계속됐는데요. 이날 화재로 22명이 사망, 8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명은 실종 상태였죠. 소방당국은 이날 인원 100여 명, 구조견 두 마리를 투입해 실종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결국 현장 합동감식 과정에서 마지막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추가로 수습됐습니다. 이로써 사망자는 23명으로 늘었죠.

이번 사고는 1989년 전남 여수 럭키화학 공장 폭발사고를 넘어 역대 최악의 화학공장 사고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당시 사고로 사망자 16명(부상자 17명)이 나온 바 있습니다.

화학공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잦습니다. 다만 이번 사고는 유독 큰 인명피해를 낳았는데요. 소방대원들의 진입 자체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죠.

▲온라인상에 확산한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초기 모습.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연합뉴스)
▲온라인상에 확산한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초기 모습.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연합뉴스)

폭탄 터지듯 '펑펑'…연속 폭발로 진화 '난항'

사망자 23명의 신원을 모두 파악하는 데엔 시간이 더 소요될 전망입니다.

앞서 소방당국은 한국인 사망자가 2명, 외국인 사망자가 20명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요. 한국인 국적자는 귀화자를 포함해 5명인 것으로 25일 판명됐습니다. 나머지는 중국 국적 17명, 라오스 국적 1명입니다. 여성은 17명으로 6명인 남성보다 많습니다.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성별 정도만 구분이 가능한 상태로, 추후 DNA 검사 등이 이뤄져야 정확한 신원 파악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는 외국인 사망자 및 유가족 지원 등을 위해 해당국 주한공관과 긴밀히 협조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죠.

사망자는 모두 발화지점인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발견됐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주로 일차전지인 리튬 배터리를 제조하고 보관해 온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불이 난 3동에는 완제품 배터리 3만5000여 개가 보관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3동 2층에서 리튬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도로 확산한 것으로 파악됐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화재 초기 현장 상황이 담긴 10초가량의 영상이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을 보면 불이 난 공장에서는 구름 같은 연기와 함께 창문마다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옵니다. 건물 2층과 1층을 중심으로 섬광탄이 터진 듯 하얀 불빛과 함께 폭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고요. 잦을 때는 초당 10차례도 넘는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들리면서 배터리 파편으로 추정되는 잔해물이 주변으로 튕겨 나왔습니다.

드론으로 촬영된 또 다른 영상에서도 건물 2층을 중심으로 폭발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섬광이 수십 차례 계속 이어지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한참 떨어진 드론에서도 선명하게 촬영될 정도로 폭발 규모도 적지 않았습니다.

소방대원들이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진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는데요. 일부 파편이 소방대원 근처까지 튕겨 나오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선착대 도착 당시 내부에 있던 배터리 셀이 연속 폭발하며 급격히 불이 번져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불은 1차 진화 판단이 내려진 오후 3시 10분께까지 4시간 40분가량 사그라들었다가 다시 커지길 반복했죠.

▲25일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25일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꺼진 불도 되살아난다…리튬 전지 1개에서 시작된 참사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리튬 전지의 화재 위험성도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리셀은 리튬 일차전지를 제조·판매하는 것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로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에 쓰이는 스마트미터기 등을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졌죠.

현대 전자기기와 전기설비 등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거의 리튬이온 방식입니다. 전기차는 물론, 스마트폰과 노트북, 친환경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갑니다.

다만 아리셀이 만드는 일차전지는 한 번 방전되면 충전해서 다시 쓸 수 없습니다. 재사용이 안 되지만, 수명이 길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특성으로 알칼리 전지 역할을 대신 합니다.

리튬이온 일차전지는 스마트그리드 계량기, 무전기 등 군수용품, 통신 장비, 전자태그(RFID) 장치, 의료기기 등에 많이 쓰입니다. 이차전지는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어 전기차, 스마트폰, 노트북, ESS 등에 활용되죠.

문제는 배터리 화재 진화는 매우 어렵고, 내부에서 계속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통상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에 의해 발생합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되는데,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과열되면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죠. 배터리 내부에 불이 나면 안전장치인 분리막이 파손될 수 있는데, 이때 양극과 음극의 화학 반응이 커지면서 눈 깜짝할 새 1000도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습니다.

이번 화재에서는 배터리에 포함된 리튬이 극소량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물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진압 방식을 택했지만, 열 폭주 현상이 한번 발생하기 시작하면 양극재의 상호반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물과 만나면 유해가스를 발생시키면서 폭발하는 특징으로 쉽게 불길을 잡을 수도, 진화 인력이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도 없죠. 한 번 화재가 발생하면 연속적인 폭발, 다시 불이 붙는 재발화, 이에 따른 건물 붕괴 우려까지 있는 셈입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기 화성 공장화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기 화성 공장화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관리 사각지대, 인명피해 키웠나

리튬 자체가 위험물질은 아닙니다. 불에 넣거나 고의로 분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자체로는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죠.

그러나 이번 화재에서 볼 수 있듯, 리튬은 반응성이 큰 금속입니다. 매우 높은 온도에 노출되거나 수증기와 닿으면 폭발할 수 있습니다. 이번 화재도 1개의 리튬 배터리에서 시작한 화재가 순식간에 다른 배터리로 붙으면서 연쇄 폭발이 발생, 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인명피해가 커진 배경으로는 리튬 전지의 기술적 특성 외에도 화재를 예방하거나 초기에 진압할 장치가 없다는 점이 거론됩니다.

리튬은 상온에서 순 산소와 결합해도 발화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차전지인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일차전지는 화재 위험성이 작은 것으로 여겨지면서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되죠. 별도의 대응 매뉴얼이나 안전기준도 없습니다.

현재 환경부의 '화학사고 위기대응 매뉴얼' 등은 유해 화학물질이 대기나 수계로 유출돼 인명·환경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리튬을 비롯한 일반 화학물질과 관련한 사고는 소방당국을 중심으로 대응이 이뤄지는데요. 소방청에도 배터리 공장의 화재를 관리할 수 있는 별도의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죠. 안전 사각지대가 공공연하게 노출된 셈이라는 지적도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정부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업장 대형화재 예방책을 조속히 마련할 방침입니다.

이날 화성시청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화성 화재사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첫 회의가 진행됐는데요. 사망자 신원확인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유가족이 어려움 없이 입국할 수 있도록 지원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을 중심으로 구성된 '산재보상대책반'을 통해 산재보상 신청이 들어오면 즉시 상담과 안내를 제공할 계획이죠.

정부는 노동부와 환경부, 행정안전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경찰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전지 등 화재위험 방지 대책 TF'를 구성하고 사업장 대규모 화재 예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노동부는 일차전지뿐 아니라 이차전지 제조업체에 대해서도 안전관리 현황을 파악하고 화재·폭발 위험성이 있는 사업장은 관계부처 합동점검을 실시할 방침인데요. 또 외국인 노동자 등 산재에 취약한 노동자 안전관리 강화방안도 수립하기로 했습니다.

관계부처는 각각 유사 시설 안전 점검 및 외국인 화재 안전교육 강화, 리튬 전지 등 화학물질에 대한 소화 약제 개발에도 나설 방침입니다.

경찰과 검찰도 수사팀을 꾸려서 신원 파악과 사망자 사인 규명 등 후속 조치에 돌입했습니다. 수원지검은 전날 공공수사부와 형사3부 등 7개 검사실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했는데요. 사망자들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병원 장례식장 등 5곳에서 직접 검시에 나섰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도 광역수사단장을 본부장으로 130여 명 규모의 전담 수사본부를 편성했죠. 수사본부는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과 함께 이날 오전 합동감식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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