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부터 은행연합회가 주요 은행들과 태스크포스(TF) 실무작업반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일주일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의 실무자들과 매일 모여 하루에 1~2시간씩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은행연 TF 회의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바로 ‘내부통제 관리조치 모범사례 만들기’입니다.
‘내부통제’란 금융회사가 경영을 건전하게 하고 주주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기준, 절차를 뜻합니다. 예컨대 은행 영업점 직원은 대출 상품을 팔 때 대출신청인의 소득을 적절히 산정해 상환 능력에 맞는 규모로 대출을 내줘야 합니다. 또, 금융투자상품을 팔 때는 소비자에게 허위나 과장 없이 위험성, 약관 내용 등을 충실히 설명해야 합니다.
내부통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불완전판매와 대규모 횡령 등 금융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2022년 8월부터 학계, 법조계, 금융회사 등의 논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안’을 마련했습니다. 이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을 통해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문서인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임원 개개인의 책무를 정해 내부통제에 관심을 두게 하고,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아래 직원에게 떠넘길 수 없게 못 박아두기 위함입니다.
은행연 TF는 금융사 임원의 내부통제 관리 조치에 요구되는 ‘상당한 주의’에 대한 모범사례를 마련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 시행을 앞둔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사 임원이 책무구조도에 따른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위반한 경우, 해당 위반 행위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다했는지 따져 제재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상당한 주의’가 무엇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죠. 은행연이 TF 구성에 나선 이유입니다.
은행권은 임원들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내부통제 기준을 관리하려면 과거 발생했던 위법 행위가 재발하지 않게 예방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고, 이를 위해 4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연구용역을 진행했습니다.
과거 은행권 금융사고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제재 내용을 분석해 김앤장이 ‘내부통제 관리조치 개선안’을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6개 은행이 모범사례 구축에 나선 상태입니다.
이들이 먼저 은행 전산시스템상 도입할 수 있는 개선 조치, 사례를 일차적으로 살핀 후 전 은행권과 공유, 의견을 수렴해 최종 ‘내부통제 관리조치 모범사례’를 금융당국에 전달하겠다고 은행연은 밝혔습니다. 시기는 법 개정안과 시행령 시행 전인 6월 말께가 될 전망입니다.
이렇게 은행연합회가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가 있습니다. 이번에 은행연 TF에 참여한 6개 은행의 2023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배임 등 금융사고는 총 41건이었습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 6건, 농협은행 6건, 기업은행 5건, 우리은행 4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금융사고 적발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습니다. 농협은행은 173억 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사실이 3건 드러났고 KB국민은행은 3월과 4월 총 376억 원 규모의 금융사고 2건이 발견됐습니다. 은행 영업점 직원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대출신청인의 소득을 과다 산정해 의도적으로 대출 규모를 부풀린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하는 첫 타자가 은행권이라는 점도 은행연합회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 요인입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부담을 고려해 특성, 규모에 따라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를 달리했습니다. 은행과 금융지주는 올해 7월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 시행 후 6개월 전인 1월 3일 전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합니다. 올해 말까지 작성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제도 도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조 회장이 책무구조도의 도입이 형식적인 제도 개선에 그치면 안 되고, 기존의 위반 행위가 실제로 재발하지 않도록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고 은행권과 연합회 실무진에 당부했다"며 "이를 위해 은행연합회가 나서서 실무작업반을 구성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은행연이 움직이기 전, 개별 은행들은 이미 내부적으로 TF를 꾸리고 내부통제 제도 개선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은행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전 본부부서가 참여하는 TFT를 구성해 임원별 책무기술서의 구체적인 안을 수립, 실질적인 이행·관리를 위한 부서장 단위의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같은 성격의 TF를 가동 중입니다. 신한은행은 올해 7월부터 책무구조도 시범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시중은행 전환을 앞둔 대구은행은 그룹 내부통제시스템 ‘아이엠 얼라잇(iM All Right)’을 구축해 수작업으로 이뤄졌던 업무를 통합, 전산으로 일괄 구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부통제전담팀장 제도도 도입해 일상점검, 교육 등을 수행 중입니다.
부산은행도 4월 말부터 TFT를 운영해 임원 책무 배분 관련 부서 의사 결정·조율과 임원별 책무 관리조치 사항 구체화를 위한 업무 매뉴얼 작성 지원 등에 나섰습니다. 향후 BNK금융지주 차원에서도 TF를 구성해 비은행 계열사 책무구조도 도입에 대응할 예정입니다.
은행연이 이번 TF 가동을 통해 전 은행권을 관통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 개별 은행도 이를 반영해 책무구조도를 작성하고, '상당한 주의'를 다한 관리 의무 수행에 대한 매뉴얼 등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다만, 걸림돌은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줄지 미지수라는 점입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은 은행권의 의견을 전부 반영해 하위 규정을 마련하면 ELS 불완전 판매 등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재를 충분히 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국이 은행연 TF 작업 결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주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내부 의견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은행연합회 측이 앞서 4월 금융당국에 금감원 제재 사유 분석 연구용역, 은행권 실무작업반 구성을 진행하겠다고 전달했지만, 금융당국이 은행연 TF 논의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검토를 약속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두고 수시로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금융당국은 2월 법 개정에 따른 위임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해 해당 법령 시행령 및 감독규정에 대한 입법예고를 실시하면서 금융권과 ‘내부통제 제도개선 지원반’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개정안에 대한 업권 의견을 듣고, 금융권 건의와 질의사항을 확인해 안내하는 등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실무적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조치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2월 구성한 ‘내부통제 제도개선 지원반’을 통해 주요 은행, 금융지주 등과 필요한 경우 수시로 만나 책무구조도 도입 관련 가이드라인, 모범사례 구축 등을 논의 중”이라면서도 “(책무구조도 도입까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발표계획은 아직 없다”고 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