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은 정비사업 입찰시 하이엔드 적용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브랜드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적용 기준은 영업기밀, 대외비란 이유로 밝히지 않고 있다. 정비사업 발주처인 조합은 비싼 공사비를 지불해야 함에도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며 입찰 단계부터 비(非)하이엔드와 구분되는 투명한 내용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하이엔드 브랜드를 보유한 6개 건설사(현대건설·DL이앤씨·대우건설·SK에코플랜트·롯데건설·포스코이앤씨)중 구체적인 브랜드 적용 가이드라인을 밝힌 곳은 현대건설이 유일하다.
앞서 현대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적용 기준으로 강남·서초·송파를 잇는 강남 H라인과 여의도·용산·성동을 잇는 한강변 H라인, 6대 광역시 중 지역별로 가장 우수한 입지적인 조건을 갖춘 사업지에만 적용하는 등 7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단지마다 최초·최대·유일의 아이템 3개 이상을 적용해 차별화를 추진한다고도 했다.
나머지 건설사들은 프로젝트 별로 입지, 규모, 상품과 서비스 수준 등을 고려해 심의를 거쳐 적용한다는 수준까지만 공개한 상태다. 때문에 하이엔드와 비하이엔드가 입지, 조경 등 통상적인 수준 외에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하이엔드를 보유한 건설사 관계자는 "하이엔드 아파트는 설계부터 벽체 두께, 층간 높이, 차음 성능, 골조까지 비하이엔드 아파트와 다르다"며 "내부적으로는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공개하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공사 선정을 진행하는 조합 조차 입찰 및 가계약 단계에서도 구체적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정확한 기준을 모른 채 높은 공사비를 책정하고, 수주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있다는 게 조합 측의 지적이다
실제 복수의 조합 집행부에선 건설사와 유착해 비하이엔드 단지와 단가 차이가 없는 상품을 적용하고 공사비만 높여 받는 '밀실 계약'을 체결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며 개선 필요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A 재건축 사업 조합장은 "하이엔드 시공을 결정하고 공사비를 책정했는데, 정확한 비교표가 없다보니 일반 브랜드와 뚜렷한 차이점 없이 가격만 비싸다고 오해하는 조합원들이 있다"며 "집행부가 건설사에게 로비를 받아서 분담금을 올린다는 등 내홍이 일어나서 조합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B 재건축 사업 조합장 또한 "하이엔드는 평당 공사비가 최소 150만~2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더 든다고 하는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공사비 갈등이 적어질 것"이라며 "우리 사업지는 자재 관련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입찰 지침서에 자재 사용서를 첨부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하이엔드 후발주자인 SK에코플랜트 '드파인'과 포스코이앤씨 '오티에르' 사업지에서 두드러진다. 2022년 하이엔드 브랜드를 출범한 두 건설사는 아직 준공 단지가 없다.
C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이번에 하이엔드 브랜드를 선정하긴 했지만 정확한 차별성도 모르고, 준공 단지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어 다른 건설사의 입찰을 바라면서 거듭 입찰을 진행했다"고 귀띔했다.
다만 건설사들도 난감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하이엔드를 보유한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내부는 비하이엔드 수준으로 마감하고, 단지명만 하이엔드로 달라고 하는 사업지도 있다"며 "투명한 정보 제공을 바라는 소비자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같은 지역 하이엔드 단지와 갈등이 불거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