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우리 주변에서 손편지를 구경하기 쉽지 않다. 며칠 동안 답장을 기다려야 하는 편지 대신 초고속으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카톡이나 이메일이 그 자리를 대치했다. 급변하는 시대, 남보다 한발 빨라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여유와 낭만이 사라진 차가운 세상에 편지가 부활한다면 조금은 따스해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편지는 느린 단점을 상쇄시킬 만한 장점도 있다. 편지를 쓰는 긴 시간 동안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또 한 문장 한 문장 엮어가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게도 된다. 실수가 적어지고 배려가 더 녹아날 수 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거나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카톡이나 문자의 악(惡)기능조차 편지에는 없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우린 어쩔 수 없이 다른 전달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편지가 사라져 버린 요즘이지만 병원에선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 남아있다. 진료의뢰서가 그것이다. 병명과 진료 과정이 담긴 딱딱한 내용이지만 그곳엔 예전 편지에 녹아있던 그 마음이 담긴다. 오랫동안 진찰했던 환자의 얼굴이 떠오르며 의뢰서에 그분들과 공유했던 기쁨, 슬픔, 아쉬움과 애처로움 등을 담고 마지막엔 꼭 회복되길 바라는 소망이란 끈끈한 풀로 봉투를 봉인한다. 답장이 올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며칠의 시간, 때론 좋지 않은 결과에 눈물짓게도, 또 회복되고 완치된 결과에 기쁨을 얻게도 되는 그 하나하나의 편지들.
오늘도 진료실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있다. 진행된 암 때문에 몇 주 전 고민과 걱정을 한가득 담아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개봉한 봉투 안에는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좋아진 환자의 경과가 기록되어 있었다. 케모포트 관리를 부탁한다는 추신이 덧붙여져서.
이제 조금은 덜 아프길, 긴 그 길의 끝에 완치의 소식이 전해지길. 소원하는 동안 따스한 햇살 한 줌이 펼쳐진 편지지 위에 스며든다. 어느덧 깊어 가는 봄날, 환한 얼굴로 진료실 문을 열고 나타날 그 환자가 벌써 기다려진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내과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