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 불응하다 병원서 체포…SPC “방어권 보장 않아” 유감 표시
창사 이래 최초로 총수가 구속된 SPC그룹은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SPC는 현재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수감 후 경영체제 변화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옥중 경영으로 인해 해외 사업 확장이 올스톱 되는 등 비상경영 체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허 회장이 역점을 둔 해외 사업이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허 회장의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위대한 식품기업)’를 향한 꿈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허영인(74) SPC그룹 회장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노동조합을 탈퇴하라고 강요한 혐의로 이날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를 받는 허 회장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증거 인멸 염려를 이유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이날 발부했다. 검찰은 앞으로 최장 20일간 의혹의 정점인 허 회장의 신병을 확보,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과정 등에 개입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이로써 SPC그룹은 황재복 SPC 대표에 이어 허 회장까지 구속되면서, 수뇌부가 모두 이탈하는 경영 공백 사태 위기에 직면했다.
SPC그룹은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만큼 당장 해외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허 회장은 ‘글로벌 사업’을 미래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2030년까지 연매출 20조 원, 전 세계 매장 1만2000개를 보유한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실제로 허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SPC그룹은 2004년 중국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10개 국에 진출해 56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허 회장이 전격 구속되면서, 당장 이탈리아 진출이 좌초될 가능성도 커졌다. 허 회장은 이번 체포 영장 발부 직전, 24일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파스쿠찌 CEO(최고경영자)이자 창업주 3세인 마리오 파스쿠찌(Mario Pascucci)를 만나 파리바게뜨의 이탈리아 진출을 논의하기도 했다. 양사는 다음날 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하며, 1년여간 협의한 끝에 맺은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파리바게뜨가 예정대로 이탈리아에 진출하게 되면 프랑스, 영국에 이어 유럽 내 3번째 진출국이 된다.
국내 식품기업이 가장 어려워 하는 ‘할랄 시장’ 본격 진출 역시 차질이 예상된다. SPC그룹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갈라다리 브라더스 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 올해 할랄 시장에 1호점을 시작으로 12개국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총수 부재로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M&A) 등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의사결정도 올스톱(all stop)할 수밖에 없다. SPC삼립의 경우, 미국 등 현지 제조 시설 설립을 검토 중이고, 파리크라상도 미국에 파리바게뜨 제빵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일각에선 허 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장남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과 차남인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SPC그룹의 향후 승계구도도 허 사장을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SPC그룹의 유일한 상장사인 SPC 삼립의 지분율을 살펴보면 허 사장이 16.31% 보유, 허 부사장(11.94%)보다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SPC는 앞서 검찰이 허 회장을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두 차례 입장문을 내고 “피의자에게 충분한 진술 기회와 방어권도 보장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