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가와바디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책이라 제일 앞부분이 이랬다.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나중에 다른 작가들은 이 부분이 너무 이국적이고 상징적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 역시 그 명문의 문장은 오래 기억에 남아도 그 부분을 이국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느끼지 못했다. 한 지역의 눈 풍경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너무도 당연하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엔 대관령과 강릉 사이에 터널도 없고, 기차도 없었지만 대관령과 강릉의 눈 풍경이 꼭 이러했기 때문이다. 불빛이 없는 곳의 밤의 밑바닥은 어디서나 까매야 하는데, 눈이 많이 내리고 겨우내 쌓여 있는 곳의 밤 풍경은 밑바닥이 하얗다.
대관령 고향마을엔 아직도 형제들이 살고 오랜 친구들이 산다. 내가 살던 옛집도 그대로 있고, 오남매 중에 한 형제가 최근 서울살이를 마감한 다음 옛집 바로 옆에 새집을 지어 살고 있다. 거실의 통창을 통하여 대관령 동쪽 면의 전체 모습이 병풍처럼 보인다. 강릉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도 대관령에는 눈이 내리는 날도 많고, 그렇게 내린 눈들은 차곡차곡 쌓여 봄이 되어야 녹는다.
특히나 강릉은 초겨울 한겨울보다 늦겨울과 초봄에 눈이 많이 내린다. 그런 기후 때문인지 외지 사람들은 강릉 하면 그곳의 관문과 같은 대관령을 먼저 떠올리고 그곳의 겨울풍경과 눈풍경을 떠올려 강릉이 무척이나 추운 곳인 줄 안다. 그러나 강릉은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는 서울보다 평균 5도 정도 따뜻하고, 여름에는 또 5도 정도 시원한 곳이다. 갑작스럽게 눈이 내려도 대관령 구간을 제외한 지역은 하루이틀 만에 다 녹아버린다.
어릴 때 연초에 어른들이 받아와서 벽에 걸어놓은 풍경 달력 중에 인상적인 봄 풍경 하나가 있다. 아마도 알프스를 배경으로 찍은 듯 먼 산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고, 마을에는 봄꽃이 가득 피어있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은 눈과 꽃이 함께 하는 봄 풍경이 늘 이국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대관령 동쪽 아래에서 살았던 우리에게는 눈과 꽃이 함께 하는 풍경이 너무도 자연스럽고도 일상적이었다. 대관령 동쪽 면에 쌓인 눈은 사월 말이나 오월 초가 되어야 녹는다.
몇 해 전 어버이날에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사 들고 대관령을 넘은 적이 있다. 그해 대관령 정상과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선자령 쪽엔 아직도 하얗게 눈이 남아 있었다. 늘 그때까지 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 오지 않는 사월보다 눈 내리는 사월이 더 많은 곳, 때로는 5월에도 붉게 핀 철쭉꽃 위에 눈이 쌓인다.
고향마을에 내려가 사는 형제는 일 년 내내 거의 시시각각으로 고향의 풍경을 형제들이 함께 하는 단체 카톡방에 올려준다. 바빠서 미처 올리지 못할 때는 서울에 사는 형제들이 얼른 찍어 올리라고 재촉한다. 며칠 전처럼 다른 곳은 전부 꽃소식인데 그곳에만 눈이 내릴 때면 더욱 그렇다.
지금은 보리농사를 짓는 땅이 드물지만, 눈속에 파란 싹이 드러나는 보리밭도 아름답고, 그 보리싹이 이내 자라 올라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푸르게 물결치는 모습도 아름답다. 내 추억 속의 봄은 늘 이렇게 눈과 꽃과 보리밭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