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오는 7월 책무구조도를 도입한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강조하고 있는 ‘정도(正道) 경영’의 방향성을 이어받아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책무구조 도입을 발빠르게 주문한 영향이다. 횡령·배임 등 금융사고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해 금융사고 예방에 선도적으로 나서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정상혁 행장은 1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연합회 이사회 회의 참석 전 본지 기자와 만나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했고, 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인 올해 7월 도입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은행 중에서 책무구조도 도입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신한은행이 처음이다. KB국민,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다른 은행들도 책무구조도 도입 시기 등과 관련한 내용을 지난달 말 금융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까지 시행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못했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1단계, 보험은 2단계, 여신업권은 3단계로 적용 시점이 다르다. 보험의 경우 2025년 이후 적용된다.
7월 지배구조법이 시행되면 금융지주·은행은 6개월 이내 및 그 외 금융사는 업종과 규모에 따라 1~3년 이내에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한다. 신한금융은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전 계열사가 순차적으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금융회사 임직원의 횡령·배임 등의 사고에 대한 CEO의 책임이 강화된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비롯해 임원별로 담당하는 내부통제 업무가 법적 근거에 따라 명확하게 규정되는 것이다. 현행법은 금융회사에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법령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 형식적인 의무만 부과돼 있어 한계가 지적됐다.
책무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자신의 책임범위 내에서 내부통제가 적절히 이뤄지도록 내부통제 기준의 적정성·임직원의 기준 준수 여부, 기준의 작동 여부 등을 상시점검하는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고를 고려했을 때 장시간 준비해온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한은행의 선제적인 액션은 ‘일류신한’과 ‘정도경영’을 강조해온 그룹의 경영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 신한금융의 그룹 슬로건은 고객 중심 일류 신한 틀을 깨는 혁신과 도전이다. 특히 진 회장은 취임 이후 재무 성과 등 외형 성장 중심에서 정도 경영으로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내실 다지기에 주력해왔다.
정 행장도 지난해 취임 후 정도경영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그는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기본, 신뢰, 미래 세가지 경영키워드는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유지할 것이고 그중에서도 ‘기본과 신뢰’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며 “재무적 성과나 미래준비도 중요하지만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단언했다.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서는 ‘고객몰입 조직’으로 변화를 선언했다. 고객몰입을 통해 신뢰받는 은행이 되자는 게 핵심이다. 신 행장은 “고객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