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직업의 귀천 의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에서 느끼는 중요도나 자부심은 하락하는 반면 경제적 보상과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은 강해졌다.
17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독일의 직업별 사회적 지위에 대한 조사 결과 한·중·일은 '국회의원', 미·독은 '소방관'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능연은 1998년 이후 4년 주기로 직업의식과 직업윤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07년과 지난해에는 해외 사례와 비교를 했고, 이번 조사에는 일본과 미국, 독일에 더해 중국도 대상에 포함됐다.
연구진은 지난해 7~8월 5개국의 18∼64세 취업자 각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먼저 생산직, 서비스직, 사무관리직, 전문직 등 직종별로 대표직업 15개를 선정해 각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지위'를 1~5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15개 직업은 국회의원, 약사, 중고등학교 교사, 중소기업 간부사원, 기계공학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 은행 사무직원, 공장 근로자, 음식점 종업원, 건설일용 근로자, 사회복지사, 소방관, 인공지능 전문가, 영화감독, 디지털콘텐츠크리에이터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4.16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약사(3.83점), 인공지능전문가(3.67점) 등의 순이었다. 일본과 중국 역시 1위는 국회의원이었고, 일본은 약사, 중국은 영화감독이 2위에 올랐다. 미국과 독일은 모두 소방관이 1위를 차지했다. 국회의원은 미국에선 12위, 독일에선 10위였다. 반면 한국에서 소방관은 11위에 불과했다.
특히 직업별 점수차도 컸다. 우리나라는 1위 국회의원과 15위 건설일용 근로자의 격차가 2.30점에 달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1위와 15위의 격차가 각각 0.92점, 0.93점에 불과했다.
이에 보고서는 "직업의 위세 격차가 한국이 두드러지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업 귀천 의식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일에서 느끼는 중요도나 자부심은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 '일의 자부심'은 5점 만점에 3.17점으로 2007년 3.36점에서 0.19점이 하락했다. '일의 중요도' 역시 7점 만점에 5.45점으로 같은 기간 0.87점이 떨어졌다.
반면 일의 흥미보다 경제적 보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도는 2007년 4.49점(7점 만점)에서 2023년 4.71점으로, 자기발전보다 고용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2007년 4.35점(7점 만점)에서 지난해 4.66점으로 높아졌다.
아울러 '자유시간을 줄이더라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은 2007년엔 5점 만점에 3.43점이었지만 지난해엔 3.06점으로 낮아졌다.
보고서는 "과거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나 고용 안정성 등 외재적 직업 가치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과거 세대에 비해 일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일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 감소하고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요구는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