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현지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100유로짜리 지폐를 건네면 종업원은 형광펜 같은 것을 들고 와서 지폐에 마구 그어본다. 이케아에서 침대, 식탁 등을 살 땐 100유로 지폐 20여장을 냈는데 역시나 모조리 펜으로 열심히 그어보고 있었다.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동양인이 고액권을 사용한다고 의심하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종업원들도 매뉴얼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유로화는 유럽연합 27개 국가 중 20개국이 사용하는 공식 화폐고 그 인구만도 3억4400만 명이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현재 유통되는 유로화는 지폐와 동전을 포함해 1조6000억 유로에 이른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현금 거래가 많은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동일한 화폐로 물건 값을 지불하다 보니 위조지폐에 대한 우려도 생기는 게 당연하다.
포르투갈은행은 최근 지난해 국내에서 1만6723장의 위조 유로 지폐가 압수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2년보다 55% 많은 양이다. 100유로짜리 위조지폐가 5353장으로 가장 많았는데 2022년 947장에 비하면 월등히 늘어난 수치다.
비슷한 시기에 ECB도 지난해에 46만7000여 장의 위조지폐를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팬데믹 영향으로 위조지폐 수가 줄었던 2022년에 비해서 그 양은 늘었지만 유통되는 진짜 지폐 100만 장당 위조지폐 수는 16장으로 2002년 유로화 유통 이후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ECB는 밝혔다.
20유로(34%)와 50유로(38.4%) 지폐가 전체 위조지폐의 70% 이상을 차지했는데 위조품의 97.2%는 유로존 국가에서, 1.9%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EU 회원국, 0.9%는 세계 기타 지역에서 발견됐다.
ECB는 “대부분 위조지폐엔 보안 기능이 없거나 매우 조잡하기 때문에 쉽게 감지할 수 있다”며 “일반인들은 위조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만져 보고, 모양을 보고, 기울여 보면’ 위조지폐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대면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지난해 위조지폐 184장이 발견돼 6년 만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쇄 기술의 발달로 위조지폐가 점점 더 정교해진다고들 하지만 진짜 지폐에 숨어있는 위조 방지 기술을 따라가기야 하겠는가. 위조지폐에 걸맞은 어릴 적 표어 하나가 생각난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코임브라(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cheh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