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약서상 ’안나’ 최종 편집결정권 쿠팡에 있어”
8부→6부 분량 줄었으나 감독 집필·연출료는 그대로 지급
2022년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드라마 ‘안나’를 연출한 이주영 감독이 쿠팡을 상대로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제61민사부(재판장 김세용 판사)는 이 감독이 저작권,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 침해 금지 등을 이유로 쿠팡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사건은 2022년 6월 쿠팡플레이에서 8부작 드라마 ‘안나’ 공개를 앞둔 시점에 불거진다.
그해 3월 말 촬영을 모두 마친 이 감독은 자신이 구상한 1차 편집본을 쿠팡에 제공했는데, 4월 성사된 1차 편집회의에서 쿠팡 측이 약 80여 개의 수정 의견을 제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작품 편집 방향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양측의 1차 편집회의가 파행하면서 다음 날 예정됐던 2차 편집회의도 취소됐다.
이 감독은 같은 해 5월 말 쿠팡에 다시 전체 편집본을 보냈지만, 쿠팡은 일부 장면을 삭제하거나 순서를 바꾸고 이 감독이 포함하지 않았던 장면을 추가하는 등 편집을 거쳐 최종 6부작으로 줄어든 ‘안나’를 6월 24일부터 순차 스트리밍했다.
이 감독이 “쿠팡시리즈 ’안나’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주장하며 이번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쿠팡의 편집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한 창작자인 자신이 당초 의도한 작품과는 다른 결과물이 됐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감독이 드라마 제작사 컨텐츠맵과 연출 계약을 맺었고, 이후 제작사 컨텐츠맵이 OTT 플랫폼 운영사 쿠팡과 시리즈 제작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안나’의 최종편집권이 쿠팡에게 귀속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감독과 쿠팡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는 없었지만, 제작사 컨텐츠맵과 쿠팡 사이의 협의 내용이 이 감독의 집필·연출계약에도 반영되면서 쿠팡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동일한 취지의 조항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쿠팡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동일한 취지의 조항’은 “쿠팡은 프로그램에 관한 모든 권리(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방송권, 2차저작물 및 편집저작물 등의 작성권을 포함하되 이에 한정되지 않음)의 유일한 독점적 소유자이다”,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제작사에 사전 고지후 프로그램을 편집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계약 내용에 따라 “이 감독 역시 편집 방향에 이견이 있을 경우 쿠팡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설령 이 감독이 당초 의도했던 세부적 기획이나 구성, 전개과정 등이 다소 달라졌고 이 감독 입장에서 자기 의도에 반하는 쿠팡의 편집행위를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해도, 이는 쿠팡에 최종 편집 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는 계약 해석상 부득이한 결과로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안나’가 최종 6부작으로 공개됐음에도 이 감독에게는 기존대로 8부작에 해당하는 각본료 2억4000만 원과 연출료 1억6000만 원이 지급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엔딩크레딧 연출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는 이 감독의 주장도 기각했다.
이 감독과 제작사 컨텐츠맵이 작성한 계약서에 “원고가 집필한 극본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에 원고의 본명 혹은 필명을 크레딧에 명기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어 “오히려 크레딧에 이 감독의 성명을 표시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