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7주간 협상 끝에 결국 수용 안해
하림 "경영권 없이 책임만 강조" 비판..동원 "재입찰 신중"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선박왕’ 꿈이 무산됐다. 하림그룹(하림)은 벌크선사 팬오션에 이어 국내 유일 원양 컨테이너 선사 HMM(옛 현대상선)을 인수하려 했으나, 매각 주체인 KDB산업은행(산은)·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와의 협상 결렬로 결국 빈손으로 등을 돌리게 됐다.
산은과 해진공은 지난해 말 하림을 HMM 주식매매 우선협상대상자(우협)로 선정하고 치열한 협상을 벌여왔지만, ‘지분 매각금지’ 조항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우협 선정 당시 하림과 양자 대결 구도를 벌인 동원그룹(동원)의 HMM 인수 재도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림은 7일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이날 매도인(산은·해진공) 측으로부터 협상 결렬을 공식 통보받았다”고 협상 결렬 사실을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미처 인수 작업을 매듭짓지 못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하림은 “HMM의 안정적인 경영 여건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건설적인 의견들을 제시하며 성실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최종적으로 거래 협상이 무산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산은도 같은 날 “우협과 7주에 걸친 협상 기간 상호 신뢰 하에 성실히 협상에 임했으나,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HMM 인수전에는 하림과 동원이 뛰어들었고, 지난해 12월 18일 하림이 우협으로 선정됐다. 하림은 계열사인 벌크선사 팬오션을 인수주체로 내세워 재무적 투자자인(FI) JKL파트너스와 함께 협상을 이어왔다. 당초 협상 마감 시한은 1월 23일이었으나, 이달 6일로 한 차례 연장됐다.
하림과 산은 등 채권단이 이견을 빚은 최대 쟁점 사안은 ‘인수 뒤 5년간 지분 매각 금지’ 조항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조 원이 넘는 HMM의 현금성 자산을 하림이 향후 인수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채권단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림은 애초 채권단이 제시한 대부분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도, 5년간 지분 매각 금지 조항에서 JKL파트너스만은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사모펀드 특성상 보유 지분을 빠르게 처분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관련 조항이 과하게 불리하다고 판단해서다. 최종 제안에선 “5년 대신 3년으로 매각 제한 기간을 줄여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채권단이 결국 수용하지 않으면서 최종 협상 결렬됐다. 하림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과 공기업으로 구성된 매도인 간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았다”며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채권단도 물러서지 않았다. 해운업은 경기 사이클 변동이 심한 만큼 HMM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인수 주체가 ‘현금성 자산’을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를 위한 하림의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HMM의 현금성 자산을 보호하려면, ‘인수 뒤 5년간 지분 매각 금지’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HMM 매각이 최종 결렬되면서, 우협 선정에서 밀려난 동원에도 시선이 쏠린다. 동원은 지난해 11월 23일 진행된 본입찰에서 하림보다 약 2000억 원 적은 6조2000억 원을 인수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동원은 2016년 동부익스프레스(현 동원로엑스)를 인수했고 항만 사업을 하는 동원부산컨테이너터미널도 운영 중이다. HMM을 품을 경우 기존 육상과 항만에 해상 운송까지 물류 사업을 확장, 시너지가 크다고 판단해 의욕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다만 아직은 HMM 인수 재도전 여부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동원 관계자는 “HMM이 향후 재매각에 나설 시점의 해운 경기와 당사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에, 현재로선 인수전 참여 여부를 답하기 어렵다”며 “해운산업 발전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재매각 절차가 시작되면 신중히 참여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