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권 부당승계’ 1심 무죄…첫 단추부터 잘못 꿴 檢 수사

입력 2024-02-05 17:05 수정 2024-02-0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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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회계부정 규명이 ‘수사본류’

法 “범죄증명 없다” 일축…삼성 ‘사법 리스트’ 일단락

삼성물산 합병 때 이재용 회장에 유리하게
‘제일모직 자회사 삼바가치 부풀렸나’ 쟁점

회계학상 공정가치 계산법 ‘여럿’
사실관계 파악 전 삼성 압박수사

분식 회계‧배임 혐의 모두 무죄
주주손해‧불공정합병 증거 없어

법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지배력 강화‧승계 목적 단정 못해
경영권 안정화, 주주에게도 이익”

미전실 임직원 13명도 혐의 벗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제기된 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시세 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전부를 5일 법원이 무죄로 봤다. 검찰 구형량은 징역 5년에 벌금 5억 원이었다. 검찰기소 이래 1252일, 약 3년 5개월 만이다.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13명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1심 재판부가 검찰 측 공소사실 모두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일축한 배경에는 수사 첫 단추를 꿴 대전제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애초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을 규명하는 검찰 수사의 핵심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도록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 가치를 고의로 부풀렸는지 여부를 캐는 데 있다.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혐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맞닿아 있어 ‘수사 본류’다. 그룹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사실상 지주회사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제일모직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는 부정행위에 관여했다는 게 검찰 논리 구조다.

하지만 회계학상 공정가치 평가 방법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한다. 어떤 기준을 택하는지에 따라 숫자가 달리 계산된다는 뜻이다.

이날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 “안진 회계법인 담당자는 평가 원칙에 반한 것이 아니다”라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안진이 평가 과정 전반에 걸쳐 평가 결과를 조작했다고 볼 수 없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삼성 임직원들이)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 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 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 신미영 기자 win88226@)
(그래픽 = 신미영 기자 win88226@)

검찰 기소後 1252일…3년 5개월만 결론

정식 재판은커녕 기소되기 전부터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의혹과 연루된 루머와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자,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혐의에 관한 피의사실이 무분별하게 공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장인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지금은 반부패수사부로 이름을 바꾼 특수2부장 시절부터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금융감독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복현 특수4부(이후 경제범죄형사부로 개편) 부장검사는 국정농단 사태 때부터 삼성의 지배구조 관련 수사를 해왔다.

이미 2020년 6월 변호사‧법학 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10대 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수사 중지와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수사 대상조차 아니라는 의견을 냈지만, 검찰은 그해 9월 초 기소를 강행했다. 앞서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 대표이사에 이들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다. 그간 공판이 106회 열렸고, 이 회장의 법원 출석 또한 95회에 달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2020년 수사심의위 ‘10대 3’ 불기소 권고에도 기소강행

이 회장 측 변호인 김유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계열사인 삼성증권 조직 동원 △자사주 집중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이 이뤄졌다는 게 검찰 공소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물산 주주들 역시 삼성바이오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득을 봤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박일경‧박꽃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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