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양형지침, 손해액 6500달러~5억5000만 달러까지 구분 적용
한국은 기술유출 피해액 산정 판결 없어…감경‧가중요소도 모호
이후 A 씨는 영업비밀 도난, 경제 스파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미국 테네시 동부지방법원은 2021년 4월 A 씨에게 징역 168개월을 선고하고, 20만1100달러(약 2억6000만 원)를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법원이 추정한 손해액은 1억2180만 달러(약 1590억 원)였다.
법원은 전문가의 증언과 피해액 규모를 계산해 이에 대한 범죄 등급을 책정하는 ‘선고전조사리포트(Presentencing Report)’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했다. 손해액에는 최소 기술개발비용(1억1960만 달러)이 포함됐다. A 씨가 해당 금액만큼 손해를 입게 할 의도가 있다고 본 셈이다.
이처럼 미국은 유출된 기술에 따른 손실금액을 구간별로 나눠 양형기준을 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기준이 없다. 기술유출 침해사범에 대한 적절한 양형을 위해서는 우선 피해액 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대검찰청이 용역을 발주한 ‘기술유출 피해 금액 산정 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양형위원회 양형지침에는 손실(loss) 금액 구간에 따른 양형기준을 정하고 있다. 특히 영업비밀과 같은 기술 유출 관련 범죄에서는 손해액 규모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하기도 한다.
양형지침을 보면 손해액 최소 6500달러 혹은 이하부터 최대 5억5000만 달러 이상까지 16개로 구간이 나뉜다. 규정된 손해액이 늘어날수록 양형도 2단계씩 가중(기본~30단계)되는 식이다. 정확한 손실 금액을 특정할 필요 없이 구간을 정해주면 된다.
반면 한국의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2023년)은 영업비밀침해행위 범죄에 대해 국내 유출의 경우 기본 징역 8개월~2년에 가중처벌을 하면 최대 4년으로 규정한다. 국외 기술 유출은 기본 징역 1년~3년 6개월에 가중처벌해도 최대 6년이다.
양형기준에 열거된 감경‧가중요소도 모호하다. 감경요소로는 ‘실제 피해가 경미한 경우’, 가중요소로는 ‘피해자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 경우’, ‘피해 규모가 큰 경우’가 있다. 손해액 산정 관련 가중요소로는 ‘범행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경우’라고만 명시돼 있다.
대검 연구과제 용역을 맡은 전우정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미국처럼 피해액이 얼마면 양형은 몇 년인지 구간별로 나누면 정확할 텐데, (한국은) 이런 기준이 없다”며 “법원은 기술유출 피해액과 이득액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으로 판단한다. 적절한 양형을 선고하기 위해서도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액 또는 이득액 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법원은 정확한 피해액을 명확하게 특정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계산법으로 내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며 “기술개발비 등 최소한의 피해액은 인정해줘야 한다. 이 문제는 범죄수익 환수로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대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선고된 기술유출 관련 1심 유죄 판결 496건(피고인별 기준) 중 판결문에 피해액이 적힌 사건은 23건으로 4.6%에 불과했다. 이 23건 중에서도 기술유출 피해액을 산정해 넣은 판결은 한 건도 없었다. 경합된 사건의 횡령이나 배임 등 피해액만 산출해 기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