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기술 가치평가로 피해액 산정 근거 마련돼
기술유출 사건 수사·공소유지에 큰 참고자료 될 전망
"개발비용, 양형 기준에 가중요소로 추가해야" 의견도
기술유출 범죄로 인한 피해액 계산에 ‘원가접근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간 뚜렷한 기준이 없어 피해액 산정에 어려움이 따랐지만, 앞으로는 이 기준이 기술유출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에 큰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본지가 입수한 ‘기술유출 피해금액 산정 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유출된 기술에 대한 가치 평가 방안 등이 담겨있다. 해당 보고서는 6월 대검찰청이 용역과제로 발주했고, 한국과학기술원(연구책임자 전우정 교수)이 연구를 진행했다.
검찰은 기술유출 사건과 관련한 피해액 추산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피해 회사가 유출된 기술에 투자한 비용을 합한 금액을 최소한의 피해액으로 정해오기는 했으나, 법원에서는 ‘계산 방식이 추상적이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보고서는 피해액 계산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첫 사례다. 검사 개인의 논리로 피해액 산정 기준을 주장하기 보다는 학자들이 연구한 전문적인 자료와 근거를 통해 재판부에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실무적으로 주장되는 부분을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 이론을 정립한 것”이라며 “법원에 공소유지할 때도 실무자의 단순 주장을 떠나 전문가가 연구하고, 타당성이 있다고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액 산정을 위해서는 미래의 피해 기업 매출액‧영업이익 감소분을 예측해야 한다. 기술의 가치는 현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시장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액 산정을 위해서는 미래의 피해 기업 매출액‧영업이익 감소분을 예측해야 하는데, 이를 특정하기 쉽지 않다. 침해 기업의 이득액 산정도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유출된 기술 자체의 가치를 평가해 증명 가능한 피해액과 이득액을 각 산출해야 한다는 게 연구의 요지다.
보고서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원가접근법’을 제시했다. 과학자‧기술자의 급여 및 보수, 연구시설 공통비, 개발공정에 사용된 원재료비 등 기술 개발을 위해 이미 투입된 비용를 기반으로 하는 방법이다.
영업비밀은 시장에 거래 자체가 없고, 등록제인 특허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시장접근법이나 수익접근법보다는 원가접근법이 구체적이고 확정적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기술이 미래에 지닐 가치를 계산하는 법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신기술이 구기술을 대체하는 속도를 예측하고 경제적 이익 등 예측값을 계산하는 ‘경제학적 분석법’과 기술유출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후의 매출과 영업이익률 등을 추정하는 ‘경영학적 분석법’ 등이다.
또 연구진은 ‘기술 개발에 소요된 비용’을 양형 기준에 가중요소로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양형 요소로 기술을 유출 당한 회사의 피해액, 기술을 탈취한 회사의 이득액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데, 기술 가치(비용)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우정 교수는 “법원에서는 피해액과 이득액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는 듯한데, 최소한 원가접근법을 통한 개발비용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