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재고용' 의무화 제안…직무 중심 급여 체계 필요
사회서비스형·시장형 일자리 통해 노인 일자리의 질 개선 가능
"노인 일자리, 청년 일자리 전혀 침범하지 않아"
"민간 노인 인력 활용으로 노인 빈곤 문제 해결"
"노인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려면 한 번 정도는 퇴직을 하고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는 의무적인 재고용을 시행했으면 좋겠어요. 다만 그렇게 가기 위해 중요한 전제 조건은 급여나 노동시간 등이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연공서열이 아닌 직무 중심의 급여 체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별위원회의 정순둘 위원장은 특위가 정책으로 제안한 '퇴직 후 재고용 의무화'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국민통합위는 10월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위를 출범시켰다. 위원장을 맡은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포함해 학계·현장·언론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다. 특위는 재고용 의무화와 청·장년의 세대 상생 일자리, 연령 친화적 의료 시스템 등에 대한 논의를 거쳐 내년 초 정책 제언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정순둘 특위 위원장은 특위 출범 배경과 관련해 "내년에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1000만이 된다고 하지만, 노인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며 "노인들이 연령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노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보통 우리가 노년이 되면 '사회로부터 은퇴한다', 다른 말로는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표현도 쓴다. 노인들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65세를 기점으로 정년퇴직을 한다고 해도 100세 시대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데, 30년 이상 역할 없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이냐는 취지에서 특위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55세 이상 고용을 확대하고 현재 60세인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령층을 핵심 인적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정 위원장은 "계속고용은 정년 없이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한 번 정년퇴직을 하고 다시 재고용을 할 것인지에 대해 노동계와 기업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재고용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는 차원의 재고용이 되려면 임금제, 노동시간 등이 유연하게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특위는 '퇴직 후 재고용'의 의무화를 정책으로 제안했다. 정 위원장은 "한 번 정도는 퇴직을 하고 다시 일자리로 들어가는 '의무적인 재고용'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노동계에서 계속적으로 고용을 해달라는 요구도 포함하면서 기업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입장도 감안해주는 차원에서 의무적인 재고용이 맞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급여나 노동시간이 유연해야 하고, 연공서열이 아닌 직무 중심의 급여 방식 등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년 철폐가 사실 맞는 방향이지만, 그렇게 가기에는 지금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의무화를 생각하면서도 급여 등의 전제 조건들이 따르는 '의무 재고용'을 특위가 제안해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위는 노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인의 노하우와 젊은 세대의 열정이 함께 할 수 있는 '세대통합형 일터'를 창출하는 대안도 모색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실제로 동일한 연령끼리 팀을 가지고 일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이 일할 때 오히려 시너지가 난다는 보고서도 있다"며 "나이가 많은 세대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나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고,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으러 출산 휴가를 가게 되면 그 일을 대신 해줘야 할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 때 노하우를 갖고 있는 노인 인력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줄 때 세대 상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노인 인구 증가에 대응해 노인 일자리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노인 일자리 수는 103만 개로 올해보다 14만7000개 늘어나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다만, 노인 일자리의 상당수가 임시·일용직 등 저임금 위주의 '질 낮은 일자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그동안 노인 일자리는 30만 원 수준의 '공익형'이 대부분이었다"며 "사회서비스형이나 시장형 일자리를 통하면 일자리의 질도 개선할 수 있고, 급여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사회서비스형 같은 경우, 청년 등이 선호하지 않는 부분들을 노인들이 맡아주면서 급여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노인 일자리의 확대가 최근 구직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노인들이 일자리를 갖는다고 해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전혀 침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노인들이 갈 수 있는 영역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첨단·IT 등 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노인의 수는 굉장히 적다"며 "노인들은 풀타임으로 계속 일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청년들이) 하지 못했던 영역의 일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청년들의 일자리를 침범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헀다.
한편, 일하고자 하는 노인들은 많지만, 정작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브리프에 따르면 지난 5월 이뤄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계속근로'를 희망하는 65∼79세의 비율은 55.7%로 나타났다. 반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정 위원장은 "정부에서 만든 노인 일자리뿐만 아니라 기업 등 민간에서도 노인 인력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구조적인 부분들이 개방된다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