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여성 영입조차 이젠 ‘진부’
다양성 보장하는 정치환경 갖춰야
“여성 정치인은 왜 사라졌을까.”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일하는 여성’인 필자는 평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자 한다. 다만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성을 향한 사회 편견과 차별적 시선에 대해 무뎌지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막이 오른 제22대 총선 레이스를 살펴봤다. ‘정치 신인’은 물론이고 70대, 심지어 80대에 이른 올드보이들까지 등장하며 총선 열기는 초반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남노소(男老小)’를 불문하고 저마다 ‘동량지기(棟梁之器: 마룻대, 들보와 같이 한 집안이나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재목을 가리키는 말)’를 외치며 출마선언에 나서고 있지만, 유독 이번 총선에서 눈에 띄는 여성 신인 정치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껏해야 국민의힘이 이수정 경기대학교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총선 영입 인사로 의결한 것이 새로운 정도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전략 지역에 청년·여성을 우선 공천하겠다고 밝힌 상황임에도 새로운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직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일 뿐이지만, 본격적인 총선레이스가 시작되더라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성 정치인의 부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제의원연맹(IPU)의 주요 국가별 여성 국회의원 비율(2022년 기준)을 보면, 한국의 경우 18.6%에 그치고 있다. 미국(27.7%) 영국(34.4%) 독일(34.9%)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문화와 관행으로 이뤄져 왔고, 이는 여성들이 정치에 진출하고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었다. 남성들이 권력과 자원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에서, 여성들이 남성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과 지원이 필요했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 심각해진 젠더 갈등으로 앞으로의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만 하더라도 유력 대선 후보자들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남초 커뮤니티 글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옹호했다. 한 후보는 성폭력특별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선거 때만 되면 이미지 세탁을 위해 ‘얼굴 마담’격의 화려한 이력과 타이틀을 앞세운 여성 신인 정치인 확보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그지없이 진부하게 반복됐건만, 올해는 이런 쇼잉(Showing·보여주기)마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총선을 두고 ‘국정 안정론 vs 정부 심판론’의 싸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거대(?) 담론이 오가면서 여성은 물론 소수자의 존재는 배제되고 있다. 여성 정치인의 부재가 단순히 성별에 따른 불평등만을 초래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곧 정치 활동에서 다양성과 다양한 관점의 부재를 의미한다. 남성과 함께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은 남성과 다른 사회적 경험과 관점을 갖고 있다.
이것이 정치 의사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차원의 정보와 견해를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성이 정치에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때다.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