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황금빛에 청량ㆍ깔끔한 맛
국산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의 카스가 독보적인 1위, 테라가 그 뒤를 쫓는 구조다. 식품산업통계정보(FIS) 올 3분기 소매점 매출 기준 카스는 점유율 37.9%, 테라 10.7%이다. 오랜 기간 사랑받는 카스, 2019년 출시해 급성장한 테라는 전형적인 라거 맥주다. 회식 자리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이 흔한 탓에 묵직함보다는 청량한 라거 맥주들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롯데칠성음료가 지난달 출시한 맥주 신제품 '크러시'도 이 시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롯데의 대표 맥주 클라우드의 동생 격으로,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해진 형 대신 점유율을 회복하러 온 구원투수인 셈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던 14일 저녁 크러시를 식탁에 놓고 성공 가능성을 진단해 보기로 했다. 크러시는 외관부터 그동안 봐왔던 맥주들과 달랐다. 투명한 맥주병은 얇고 길었는데, 빙산이나 크리스털을 깎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라벨은 파란색과 에메랄드색이 그라데이션 된 배경에 빙하가 그려져 있었다. 중앙에는 상품명인 'KRUSH'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투명한 병이었기에 안에 든 맥주 내용물이 더욱 잘 보였다. 크러시는 알코올 도수 4.5도의 페일 라거인데, 페일 라거 특유의 선명한 황금빛이 눈에 띄었다. 페일 라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대중적인 맥주로, 국산 맥주 대부분이 이 종류다. 쓴 맛, 단 맛을 줄인 게 특징이다. 병뚜껑을 따 잔에 맥주를 따르니 황금빛 맥주가 콸콸 쏟아지며 윗부분에 뽀얀 거품이 생겼다.
한 입 마셔보니 탄산음료를 마실 때처럼 톡 쏘는 느낌이 강했다. 풍부한 탄산 덕에 라거의 청량함이 더욱 살았다. 전반적으로 무겁지 않고 자기 주장이 세지 않은 맛이었다. 다시 한번 마셔보니 라거치고는 에일을 마시는 것 같은 특유의 향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전 세대의 입맛을 고려한 만큼 누구나 즐길만한 무난한 맛에 더욱 가까웠다. 몇 모금 더 들이켜보니 맥주만 마시기에는 약간 맹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자체로 마시기보다는 카스나 테라처럼 소주와 탔을 때 궁합이 더욱 좋을 것 같은 술이었다.
아쉬운 점은 기존 제품들과 비교해 눈에 띄는 특별한 장점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드가 2020년 '생드래프트'를 출시한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신제품이라는 점, 특정 층이 아닌 대중을 겨냥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시장의 평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처음처럼 동생 '새로'로 대박을 터뜨렸던 것처럼 클라우드 동생 크러시로도 다시 한번 웃을 수 있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