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쓴물 다 빠진 줄 알았는데”…아직도 트로트가 통한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12-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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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N ‘현역가왕’)
▲(출처=MBN ‘현역가왕’)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이 방송 초반부터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송 2회 만에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데 이어 지상파, 종합편성(종편), 케이블 채널에서 동시간대 방송된 모든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거머쥔 겁니다.

5일 방송된 ‘현역가왕’에서는 치열한 평가전 무대가 그려졌는데요. 방송 내 ‘팬덤 1위’에 빛나는 전유진부터 현역 최고참 김양, ‘발라드 퀸’ 린 등 실력이 빼어난 가수들이 출격해 눈과 귀를 즐겁게 했습니다.

이날 방송은 전국 시청률 8.5%(닐슨코리아)를 기록했는데요. 최고 시청률은 9.8%까지 치솟으면서 화요일 밤을 장악할 기세를 예고했죠.

그러나 사실 트로트 예능이 그렇게 새롭진 않습니다. 실력자들이 출연해 경합을 벌이고, 심사위원과 시청자 투표 등 가점 요소로 대결의 승자를 결정하며, 패자의 안타까운 소감이 눈시울을 붉히는 포맷은 이미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MC부터 출연자까지 낯익은 경우가 많습니다.

패기 넘치는 신인, 혹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실력자를 발굴하는 데 주력했던 트로트 예능은 예전과 달리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진 못하고 있는데요. ‘현역가왕’에 이어 또 다른 트로트 프로그램이 방송될 예정이라 의문을 자아냅니다. 일각에서는 “이젠 식상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기도 한데, 방송사들은 왜 트로트 예능을 꾸준히 선보이는 걸까요?

▲(출처=TV조선 ‘미스트롯’)
▲(출처=TV조선 ‘미스트롯’)
그간 방송된 트로트 예능 뭐 있나…열풍의 시작은 ‘미스트롯’

한때 트로트 열풍은 대한민국 전역을 집어삼켰습니다. TV만 틀면 트로트 프로그램이 나왔고, 광고에서도 트로트 예능 출연자를 볼 수 있었으며, 주로 아이돌 그룹이 무대를 선사하던 공연장도 이들이 채웠죠. 트로트 가수들의 신곡이 나왔다 하면 음원 차트 최상단에 진입하고, 방송 시청률은 두 자릿수를 거뜬히 기록했습니다.

트로트 열풍의 시발점으로는 2019년 방송된 TV조선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1’)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미스트롯1’은 자체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했는데요. 방송사 기획과 미처 표출되지 못한 대중의 열망이 맞물려 큰 성공을 거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TV조선의 주 시청자들은 중장년층인데, 이들이 즐겨듣던 노래 장르로 경합을 벌이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왔죠. 참가자들의 연령, 연차도 다양해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었고, 이에 기반한 퍼포먼스가 펼쳐져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미스트롯1’은 ‘트로트 여신’ 송가인을 배출하기도 했죠.

트로트 인기는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1’)을 통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스터트롯1’은 예능도, 광고도 ‘떴다’ 하면 기록을 세우는 임영웅부터 영탁, 이찬원, 정동원 등 스타들을 발굴해냈는데요. 첫 회 시청률 12.5%로 시작해 최종 우승자가 발표된 마지막 회는 무려 35.7%를 기록했습니다.

또 시청률데이터기업 TNMS에 따르면 첫 방송(2020년 1월 2일) 219만 명 시청자로 시작한 ‘미스터트롯1’은 마지막 방송(2020년 3월 14일)에서는 726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첫 방송 대비 무려 507만 명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최종 우승자를 뽑는 결승전 생방송 문자 투표에는 773만여 건의 문자가 한꺼번에 몰렸는데, 결승 진출자 7명의 득표수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서버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죠. 이에 최종 우승자 발표가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제작진조차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인기였던 겁니다.

TV조선은 이어 선보인 ‘미스트롯2’로 3연속 트로트 오디션 흥행사를 썼는데요. 첫 회부터 시청률 28.6%로 시작한 ‘미스트롯2’는 32.9%로 종영했습니다.

이후 종편뿐 아니라 케이블, 그리고 지상파 채널까지 트로트 열풍에 뛰어들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트로트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한 건데요. MBN ‘트로트 퀸’, ‘보이스트롯’, MBC 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SBS ‘트롯신이 떴다’, KBS2 ‘트롯 전국체전’ 등이 전파를 탔죠. 트로트로 쏠쏠한 재미를 본 TV조선도 ‘뽕숭아학당’, ‘사랑의 콜센타’, ‘화요일은 밤이 좋아’ 등을 줄줄이 선보였습니다.

▲가수 임영웅(왼쪽), 송가인. (출처=물고기뮤직, 뉴시스)
▲가수 임영웅(왼쪽), 송가인. (출처=물고기뮤직, 뉴시스)
트로트 예능의 홍수…송가인·임영웅 이후 ‘대형 스타’는 어디에

방송사들이 일제히 트로트에 주목하면서 “TV를 틀기면 하면 트로트가 나온다”는 반응도 속출했는데요. 모든 트로트 예능이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건 아닙니다.

우선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배경으로 거론되는데요. 형식이 비슷한 트로트 예능이 우후죽순으로 생긴 탓입니다. 경합을 펼치며 최종 우승자를 뽑거나, 앞서 얼굴을 알린 트로트 가수들이 커버 곡을 열창하면서 무대를 꾸미는 정도라 매번 색다른 재미를 주진 못했죠.

실로 ‘트롯신이 떴다’ 출연진은 ‘미스터트롯’에서 심사위원을 진행했던 출연자들과 절반 이상이 겹쳤는데요.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시작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식상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경쟁 프로그램이 쇄도하는 탓에 관심은 흩어졌으며, 다수의 출연자가 겹치면서 새로운 얼굴도 발굴되지 못했습니다. 송가인·임영웅 같은 대형 스타도 아직 배출되지 않았죠.

이 같은 부작용은 숫자로 고스란히 드러났는데요. 올해 3월 종영한 ‘미스터트롯2 - 새로운 전설의 시작’(이하 ‘미스터트롯2’)는 방송 전까지만 해도 ‘제2의 임영웅이 나올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안성훈이 최종 우승자에 뽑힌 최종회에선 자체 최고 시청률 24%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스터트롯1’과 비교했을 때 10% 이상 낮은 수치입니다.

결승전 생방송 문자 투표수도 전 시즌 대비 줄었습니다. ‘미스터트롯2’ 문자 투표수는 252만여 표로, 시즌1보다 520만여 표가 줄어들며 3분의 1가량으로 토막 났죠.

이외에도 트로트 예능들은 출연자 사생활 의혹, 방송 공정성 논란 등이 거론되면서 매력도가 낮아졌고, 출연자가 갑작스레 하차하거나 방송이 당초 계획보다 빨리 종영하는 등 아쉬운 결말을 맞기도 했습니다.

▲(사진제공=TV조선, MBN)
▲(사진제공=TV조선, MBN)
‘표절 갈등’도 불거져…포맷 놓고 다투는 방송사들

여기에 방송사 간 표절 소송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TV조선이 자사 트로트 예능의 포맷을 표절했다며 MBN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MBN도 TV조선이 자사의 다른 예능을 베꼈다면서 맞대응에 나선 겁니다.

2021년 1월 TV조선 측은 “지속해서 시정을 요구했음에도 MBN의 포맷 도용 행위가 계속돼 ‘보이스트롯’을 대상으로 포맷 도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습니다. TV조선은 MBN의 ‘보이스트롯’과 ‘보이스퀸’이 자사의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 포맷을 도용했고, ‘트롯파이터’는 ‘사랑의 콜센타’를 베꼈다고 주장했죠.

TV조선은 “MBN은 1년여 동안 어떠한 응답도 시정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소송을 앞둔 1월 13일 처음으로 표절 논란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이 소송은 단순한 시청률 경쟁을 위한 원조 전쟁이 아니라, 방송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경계심 없는 마구잡이 포맷 베끼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MBN은 표절이 아니며 오히려 TV조선도 자사의 다른 예능 포맷을 도용했다고 반박했습니다. MBN도 같은 날 입장을 내고 “‘보이스트롯’, ‘트롯파이터’ 등은 TV조선의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들과 전혀 무관함을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며 “‘보이스트롯’은 남녀 연예인으로 출연자를 한정하고 있고, ‘트롯파이터’는 자사가 지난해 2월 방송한 ‘트로트퀸’ 포맷을 활용한 것으로 ‘트로트퀸’은 ‘사랑의 콜센타’보다 두 달 먼저 방송했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면서 “MBN은 과거 본사 프로그램과 유사한 TV조선 프로그램으로 인해 먼저 피해를 봤다”며 “MBN의 간판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가 성공하자, TV조선은 2017년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인 ‘자연애(愛) 산다’를 제작해 25회나 방송하며 ‘나는 자연인이다’의 상승세에 피해를 줬다”고 지적했죠.

방송사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트로트 예능을 선보이고 있는 두 방송사의 갈등으로 국내 종편 채널 간 쌍방 표절 소송전이 시작됐는데요. 방송사간 프로그램 포맷 표절 소송은 처음입니다.

▲(사진제공=TV조선)
▲(사진제공=TV조선)
트로트 예능 못 놓는 방송사들…‘미스트롯3’은 다를까?

방송사들이 트로트 예능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전만큼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비교적 안정된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에 트로트 예능의 명가 TV조선은 올해 연말에도 신작을 내놓습니다. ‘미스트롯3’인데요. 가수 이효리의 춤 선생으로 유명한 가수 길건, ‘트롯 전국체전’으로 이름을 알린 오유진, 러시아 출신 방송인 안젤리나 다닐로바,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방송인 신수지 등 쟁쟁한 출연자들을 앞세워 시선을 끌었죠.

여기에 MC 김성주를 필두로 가수 장윤정, 김연자, 진성, 붐, 장민호, 박칼린, 황보라, 그룹 슈퍼주니어 은혁, 이진호, 빌리 츠키가 마스터 군단으로 합류했습니다. 제작진은 “압도적 실력의 신선한 얼굴들이 출연한다”며 “차원이 다른 경연이 펼쳐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다만 일각에선 트로트 예능, 특히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식상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고, 방송에서 배출된 스타들의 화제성도 이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만큼 성공 여부를 단언할 순 없는데요. ‘미스트롯3’이 지난 시즌의 아성을 넘고 신선함을 선보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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